'짬보'

'에세이 빠나콘' 네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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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8일 네 번째 메시지 : ‘짬보’


“으이구 저 짬보 또 운다.. 얼른 뚝 그쳐”


어린 시절, 나는 ‘짬보’라고 불렸다. 걸핏하면 울어버리는 나에게 부모님이 붙인 별명이었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아주 서럽게 울었기 때문에, 단순히 눈물이 많은 아이를 의미하는 ‘울보’보다 짬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긴 했다.


어린 나에게는 서러운 일이 많았다. 형이 컴퓨터를 비켜주지 않아 서운했고, 엄마가 자꾸 나에게만 심부름을 시켜 섭섭했으며, 학교 가기 싫은 날에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입술을 오리 부리처럼 삐쭉 내밀고 잔뜩 미간을 찌푸린 뒤, 불쾌하다는 내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 소심한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마치 기침이 나올 때나, 하품할 때처럼 나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왔다. ‘지금 슬프니까 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내가 이미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게 빨랐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울지 말라고 한들, 울음을 그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울음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것 또한 서글퍼 더 크게 울곤 했다. 짬보였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울면서 학교에 가는 날도 있었고, 학교에 갔다 와서 우는 날도 있었으며, 학교에 가지 않고 우는 날도 있었다.


눈물을 조금씩 통제할 수 있게 된 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인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통과하면서,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남자란 무엇인지, 왜 남자는 울면 안 되는지를 내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는 건 나쁜 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게 나는 무엇인지도 모를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울음을 참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울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에 나는 눈물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그 방법은 바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연을 내 것이 아닌 양 타자화하는 거였다. 때로는 어차피 영화니까, 드라마니까.. 하면서 극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했다. 간단히 말하면 울지 않을 수 있는 비법은 슬퍼지려 하기 전에, 그곳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정 눈물이 날 것 같으면, 하품을 크게 하는 척하며 눈물을 찔끔 흘리는 방법도 터득했다. ‘눈물 항체’를 만들어야 눈물이라는 바이러스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훗날 눈물을 통제할 수 있게 됐을 때는 약간 뿌듯함도 느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눈물 항체를 갖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정작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많이 좋아했던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울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빈소에는 다녀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의 할머니는 시집을 온 이후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친정 식구들과 크게 왕래가 없었더랬다. 친정에서도 이제는 바깥사람이라며 할머니의 연락을 기대하지도 않으셨다고 하셨다. 당신보다 손자들을 더 사랑하시는 할머니에게 친구나, 여가생활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할머니는 ‘자식과 손주들 때문에 산다’는 표현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셨다. 그래서인지, 조문객은 할머니의 친정 식구들 몇몇과 친구분 몇 명이 다였다.


나는 오랫동안, 비어있는 할머니의 빈소를 지켰다. 향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담담하게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았다. 빈소를 지키는 동안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려 애도를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기억과 감정은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고, 생각과 표현도 따로 놀았다. 슬픈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는 내 훈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어쩌면 울지 않기 위해, 할머니의 죽음 자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장례식을 끝마칠 때까지 나는 할머니를 위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

‘그딴 훈련을 왜 해서...’ 한동안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에 솔직한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잘 공감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더 나아가 내 감정을 남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도 슬픈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며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그들이 가진 공감 능력은, 내게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짬보로 돌아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진짜 남자’ 따위는 공짜로 준다고 해도 선택하지 않을 생각이다. 진짜 남자를 수백 트럭 가져다준다고 하더라도, 우리 외할머니를 이길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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