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스 Aug 09. 2020

꿈 없이도 행복을 꿈꾸고 있어.

영화 해석 및 리뷰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


<찬실이는 복도 많지> : 꿈 없이도 행복을 꿈꾸고 있어.


김초희 감독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꿈을 먹고 살던’ 영화 프로듀서의 비극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영화다. 영화는 지 감독의 죽음을 알리는 장송곡으로 시작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분위기는 그다지 무겁지 않다. 돈도 없고, 남자도 없는데 한순간에 실업자가 돼 버린 찬실(강말금)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피(윤승아)의 집에서 일을 시작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영화를 계속해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찬실을 보면서, 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영화 속에 녹아있어 생생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감독은 꿈에 집착하던 찬실이 꿈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때 꿈에 대한 집착 정도를 보여주는 장치로 ‘높이’가 쓰인다. 영화 초반, 카메라는 찬실이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을 담는다. 높이가 꿈에 대한 집착 정도를 보여준다고 할 때, 찬실은 지 감독의 죽음 이후 일종의 내몰림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연기를 좋아하지만, 연기 외에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소피의 빌라촌은 평지에 있다. 찬실이 소피의 집에 처음 들어가기 전, 카메라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평평한 소피의 집을 조명하는데, 두 인물이 각각 다른 환경에 처해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면 찬실은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며 꿈과 행복의 균형을 찾는다. 그 다음 등장하는 장면이 후배들과 산을 함께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다. 찬실이 영화로 성공해야한다는 부담감을 덜어내는 장면을 감독은 수직적인 공간 대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를 주요 테마로 다루는 작품답게 영화와 관련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조를 통해 별것 아닌 게 제일 소중한 거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국영(김영민)이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 연상되는 영화를 보며 기립박수를 치는 것도 비슷한 의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열차가 지나간다는 것 자체가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와 기차로 요약해 표현하고 있다. 영화라는 소재를 촘촘하게 활용하는 감독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김초희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살면서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찬실은 집도 없고, 남자도 없지만, 가족같이 지내는 할머니(윤여정)와 자신을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영화는 숫자나 별의 개수가 아니다’라고 말하던 지 감독의 말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인생도 누군가가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의 기차는 계속 달려가고 있고, 인생을 비추는 영사기도 부지런히 돌아간다. 몽땅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면 행복으로 가는 여정은 머나먼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끼도 야수가 될 수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