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 >
(스포주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리뷰
마지막 살인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파나마 공화국에서 여생을 보내려던 인남(황정민)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통화가 끝난 후 인남은 자신의 옛 애인이 죽었다는 사실과 존재조차 몰랐던 자신의 딸을 그녀가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살인마는 갑작스레 딸의 생사를 확인하겠다며 태국으로 떠난다. 맘 편히 잠잘 수 있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했던 인남의 노력은 한순간에 없었던 일처럼 돼버린다. 장례식장에 돌연 등장한 레이(이정재)는 갑자기 형의 복수를 하겠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인남을 쫓는다. 두 명의 인물은 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추격전을 이어간다.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와 막연한 전개, 미흡한 캐릭터 구성이 만들어 놓은 구멍은 화려한 액션이라는 장점으로도 잘 메꿔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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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총, 수류탄 등 다양한 무기가 등장하고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액션이 줄을 잇는다.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액션신이다.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한 섬세한 표현법과,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 정도로 부상을 겁내지 않는 배우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영화 후반부, 인남이 유민(박소이)을 남겨놓은 모텔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조폭들을 처치하는 장면이 있다. 소음기를 단 권총으로 머리에 총알을 정확히 꽂아 넣는 인남의 모습은 <킹스맨> 속 요원들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빠른 템포의 전투 장면과 폭력적인 장면을 가벼운 일인 양 처리해버린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감독은 하나의 전투 장면을 표현할 때도 속도의 변주를 활용하는데, 액션에 특히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는 느낌이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화려한 전투신 이후에 생기는 의문과 공허함은 오로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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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빌드업’ 과정에서의 허점이 많다. 캐릭터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 생긴 구멍에서는 바람마저 분다. 레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 ‘안톤 시거’를 연상시킨다. 살육을 본능으로 여기고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레이와 안톤 시거의 말은, 두 인물을 악마로 묶는다. 도축용 공기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안톤 시거, 살인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레이에게는 살인이 일상이라는 명제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이라는 인물의 일관성은 ‘형의 복수’라는 인간적인 이유 앞에서 약해진다. 형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왜 복수를 다짐했는지 등 의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시마다(박명훈)를 감금시키는 장면에서 동료와의 좋은 호흡을 보여주지만, 이 인물들이 레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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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을 떠올리게 하는 인남 역시 어색한 캐릭터인 건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 인남이 야쿠자 두목을 죽이는 장면은 <레옹>의 첫 장면을 연상시킨다. 죽기 전 수류탄을 활용하는 부분이나, 유민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독백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레옹의 죽음을 목격할 때와 인남의 죽음을 목격할 때 그 무게감의 차이는 확연하게 다르다. 혼자 남겨질 마틸다에게 느낀 연민이 유민에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남과 유민의 관계 속에는 마틸다와 레옹과 같은 유대감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했던 마틸다와 레옹과 달리 유민은 여행용 가방 속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닐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침대 밑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유민의 모습도 어색하기 짝이 없고, 인남이 동전 마술을 보여주면서 부녀관계를 작위적으로 엮어보려는 시도도 매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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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킹스맨>과 <레옹> 사이를 어정쩡하게 지나가고 있다. 하드보일드의 사전적 의미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로 액션에 치중하거나, 조금 더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전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추격자>와 <황해> 등을 각색한 감독의 능력과 <버닝>, <기생충> 등에서 활약해 훌륭한 미장센을 보여줬던 홍경표 촬영감독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작품의 완성도가 더욱더 아쉽다.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디테일의 문제인 셈이다. 신파적인 요소를 아예 배제할 것이냐, 아니면 플롯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것이냐, 감독은 선택해야 한다. 영화 속 동전 마술처럼, 다 알고도 속아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