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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Sep 01. 2020

난 여기 있다

영화 해석 및 리뷰 < 내 몸이 사라졌다, 2019 >

시간의 흐름이 모여 세월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세월을 하나하나 잘게 쪼개면 찰나의 순간들이 보인다는 의미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제레미 클라핀 감독의 <내 몸이 사라졌다>는 흐르는 시간에 관하여 표현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영화는 잘린 손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해부실에서 탈출한 듯한 잘린 손은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여행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손은 새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쥐에게 쫓기기도 하지만 꿋꿋이 어디론가로 향한다. 사람이 아닌, 신체의 일부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잘린 손이 잃어버린 자신의 신체를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손이 주인을 찾아가는 사이에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함께 전개하는데, 바로 주인공 나오펠의 이야기다. 손이 주인을 찾아가는 모습과 손을 잃어버리게 된 나오펠의 사연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고, 영화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시간적 배경이 합쳐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순간순간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한 영화답게, 이야기 전개에서도 일부가 모여 하나를 이뤄내는 듯한 연출을 사용한 것이다. 손이 신체를 찾아가는 것과, 어린 나오펠이 어른 나오펠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세련되게 그려냈다.


감독은 각각의 소재에서 상징을 숨겨놓았는데, 이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파리’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영화 속에서 파리는 계속해서 나오펠을 쫓아다닌다. 이 작은 파리는 이후 나오펠의 운명까지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리의 작은 날갯짓이 모여서 큰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작은 순간들이 모이면,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파리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 축약해 보여준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가브리엘의 말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흘러가는 순간을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항상 현재에 살고, 미래에 가서야 과거를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나오펠 역시 먼 훗날에야 그 소리를 다시 듣게 된 것처럼 말이다.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만,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할 수 있다.


“비는 소리를 내지 않아요. 통과할 뿐이거든요”

가브리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우리가 빗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쯤에는 비는 이미 어딘가에 부딪히고 없다. 비가 떨어지는 순간을 잡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비가 온 이후에나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최대한 움직여야 한다.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온전한 나로 살 수 있기 위해. 지금이라도 귀를 열어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자. 한여름에도 부지런히 이글루를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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