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셔츠

'에세이 빠나콘' 여덟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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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아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반바지에 어울릴 만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 ‘레그 트리머’를 사고 셔츠 안에 착용할 니플 패치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평소 자기관리가 그렇게 철저한 편은 아니지만, 노출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근, 교수님 한 분과 인터뷰를 했다. 공무원들이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거슬리는 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쫙 달라붙는 교수님의 티셔츠에서 돌출된 어떤 것. 이른바 ‘찌셔츠’였다. 애써 쳐다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그 찌셔츠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런 내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당당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하던 교수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의 당당함의 근원이 궁금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싶던 게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그냥 궁금했다. 혹시 속살이 비칠까 걱정하며 어두운 셔츠를 입고, 꼼꼼히 패치까지 붙이는 나와 교수님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도 나름대로 한참 공들였던건지도 모른다. 머리도 매만지고 티셔츠의 구김도 확인했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걸러낼 수 없던 거겠지. 다듬어야 할 옷매무시의 범위 안에 찌셔츠는 없었겠지. 생각은 그 정도에서 그쳤다.


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봤다. 만약 교수님의 성별이 여자였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거다. TV를 보는 시청자가 잠시 민망함을 느끼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 거라는 걸 누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누군가가 영상을 캡처하고, 사진들이 어디론가 떠돌아다니고, 가십거리가 됐을지 모른다. 교수님이 창피함을 느끼는 사소한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 교수님에게 수치심을 주는 수준으로 커졌을 테다.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에 관계없이 말이다. 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난도질을 당하던 몇몇 인물들을 목격해온 바 있다.


나는 이 지점에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차별이 널리 퍼져있고, 하다못해 찌찌에도 권력이 숨어있다는 사실 말이다. 방대한 이론을 공부하고, 거대한 담론에 뛰어드는 것보다 이런 작은 지점 하나하나를 알게 되는 것에서 느끼는 바가 더욱 컸다.


교수님의 사례를 꺼냈지만, 절대 교수님을 비난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찌찌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사례로 이 일화를 끄집어냈다. 찌찌는 평등한데, 왜 찌찌를 다루는 방식은 평등하지 않은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밖에도 생각해보고 싶은 지점은 더 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성 역할로 구분 지어지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남자 네일아트 전문가, 여자 목수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교수님과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 교수님은 짙은 색 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는 여전히 당당했지만, 다행히 눈에 밟히는 건 없었다. 셔츠는 다소 두꺼운 재질에 짙은 색깔이어서, 니플 패치가 따로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교수님은 자신이 나온 뉴스를 모니터링한 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언급을 해준 것일까. 궁금한 마음은 컸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그가 사소한 것에도 관심이 생긴 것이길 바랐다. 그가 내뿜을 수 있는 당당함은, 사소한 권력들이 쌓여있는 땅 위에서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나는 우리가 모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니플 패치, 레그 트리머와 같은 영어표현으로 민망함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면 더욱더 좋겠다. 찌찌가 진정으로 평등해지는 순간을 기대하며. 거울 앞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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