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크기

'에세이 빠나콘' 열한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메일링 서비스인 '에세이 빠나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곳입니다.

구독자분들께 전달된 메일이 2주 후, 이 곳에 공개 될 예정입니다.

구독 문의는 인스타그램 DM이나 댓글을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게는 두 개의 학번이 있다. 12학번과 15학번. 둘 다 내 것이지만 어느 것도 정확하진 않다. 12학번은 내게 단절된 학번이고, 15학번은 일부가 건너 뛰어진 학번이기 때문이다. 졸업 이후에는 학번을 그다지 언급할 일이 없었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누군가가 내게 학번을 묻는 일은 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구구절절 내 상황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편입을 결심한 계기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입학 이후 정신없이 놀기 바빴던 1학년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건은 있다.


학창 시절, 대학에 대한 환상이 꽤 컸다. 배워보고 싶었던 교양과목도 듣고, 온종일 도서관에서 책 읽는 시간도 기대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가둬놨던 꿈을 드디어 발산할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머릿속은 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주어진 시간은 흘러넘쳤지만, 대부분 시간을 다른 곳에 사용했다. 동기들과의 술자리, 선배들의 호출로 인한 술자리, 친구와의 술자리 등 다른 의미로 나는 몹시 바쁘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은 항상 품고 있었다.


그날도 선배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그중 졸업을 앞둔 선배가 있어, 선배의 진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선배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뭐 다른 거 할 거 있겠냐. 그냥 대충 공무원이나 준비하겠지. 뭐.”


나는 흠칫했다. 선배가 공무원을 준비하겠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대충 공무원’을 준비하겠다고 말해서였다. 더욱 놀랐던 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이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거대한 포부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생각 없음을, 그토록 생각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꽤 우울한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동기들과의 대화에서, 다른 선배와의 대화에서 비슷한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자를 꿈꾸고 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나를 꽤 신기해했다. 그들의 이질적인 시선을 느낀 이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를 옮기고 난 이후,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똑똑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새롭게 만난 사람들은 나를 특이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신기해하기보다는 내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조언했다. ‘대충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어떤 직렬에 어떤 공무원인지까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편입 이후, 나는 내 친구들로부터 ‘세탁장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넷플릭스의 인사 철학을 담고 있는 책 『규칙 없음』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조직 내에 평범함을 추구하는 인원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조직은 평범한 성과에서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 '적당히'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조직 내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평범한 인원에게 두둑한 퇴직금을 쥐여주며 내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소 거친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만나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꿈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나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집단 간의 차이는 개개인의 능력 차이라기보다는 조직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이게 되겠어?, 우린 이것까지는 무리야.’

만류하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구속력이 강해서 실제로 행동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반면, 용기를 북돋아 주고,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도는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느낀 이 교훈이 깊게 와 닿는다.


‘이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허수아비들의 외침 때문에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그 일에 도전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 하게 된다. 지금 이렇게나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그런 사소한 부정어들을 하나하나 극복해온 결과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대견함도 느낀다.


우리 사회는 많은 부정어를 양산해낸다. 너는 원래 그 정도라며 적당히 마무리 지으라고 한다. 대충 공무원으로 살고 싶다는 선배의 말처럼 그냥 그렇게 살라고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집단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남의 생각을 깎아내리기보다는 서로를 보듬고,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주는 그런 무리 말이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라면, 작지만 귀중한 성과를 분명히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여러분의 내면에는 상처받기 쉬운 어린 예술가가 있다.
여러분의 가장 큰 실수는 그 어린 예술가를 데리고 이 예술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중략)
학교에서는 평생을 함께할, 평가와 비난이 아니라
격려와 사랑을 함께 나눌 예술적 동지를 구하라.

타인의 재능을 샘내지 말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
훗날 여러분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활동을 시작할 때 양분으로 삼고
그 어린 예술가의 벗으로 키우라.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中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호의와 샘 오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