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와 샘 오취리

'에세이 빠나콘' 열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메일링 서비스인 '에세이 빠나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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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 역으로 나온 류승범은 크게 분노하며 말한다. 부당거래의 명대사라고 알려진 이 대사는 이미 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후련하기보다는 불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말을 자세히 곱씹어보면 호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위계 관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른바 ‘샘 오취리 사건’이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은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의 졸업사진에서 출발했다. 학생들은 흑인의 장례식 문화(관짝밈이라고도 불린다)를 풍자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했는데, 방송인 샘 오취리는 이에 대해 ‘블랙 페이스’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잠시 후, 샘 오취리에게는 ‘재미 삼아 한 건데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구냐’는 말과 ‘네가 뭔데 참견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결국 그의 인스타그램을 전부 뒤져 문제가 될법한 말을 찾아냈다. 논란이 커지자 샘 오취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고 방송 중이던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했다.


나는 샘 오취리에게 쏟아진 비난이, 류승범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말속에는 ‘너는 그런 요구나 비판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차별의식이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경찰 주제에 검사에게 바라는 것이 왜 이렇게 많냐는 류승범의 생각과 가나 출신 주제에 한국인에게 지적한다는 몇몇 네티즌의 생각은 비슷한 결을 이어나간다. 모두가 ‘내가 이 만큼 해주는데 감히’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의정부고 학생들이 ‘블랙 페이스’의 역사적인 맥락을 알지 못했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를 불편하다고 여기는 시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는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아주 악랄한 수법일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샘 오취리가 사람들로부터 ‘건방진 놈’으로 낙인찍힌 이후, 그는 가끔 뉴스 댓글에서 소환된다. 그 뉴스들은 주로 아프리카의 부정부패, 범죄 등을 다루는 내용이다. ‘샘 오취리는 저런 나라에서나 살아야 한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과, ‘저기에 가서 대통령이나 해라’ 하는 조롱이 대다수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국인의 국민성을 언급하는 일본 극우 정치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호의는 베푸는 것,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호의를 베풀고 되돌아올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호의가 아니다. 대가로 무언가를 받고 싶다면 그것은 그냥 거래 관계라고 표현하면 된다. 거창하게 호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속앓이할 필요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고 말하던 류승범은 한 번도 호의를 제대로 베풀어 본 적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권력자의 자기만족, 딱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친다.


자기만족을 호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 내가 완벽하지 않고, 나도 다른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고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보상심리를 만들고, 이는 류승범의 분노로 이어진다.


식당에서 한 어린아이가 뛰어다니다 다른 테이블에 물을 쏟는다. 어린아이의 부모님은 ‘애가 조금 그럴 수도 있죠.’라고 뻔뻔하게 대답한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성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고급스럽게 응대한다.


‘애들은 그럴 수 있어, 근데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인터넷에 가끔 올라오는 이 이야기는 샘 오취리 사태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의정부고 학생들은 모를 수 있다 하더라도, 어른들은 그러면 안 되지’


하루빨리 가짜 호의들이 가면을 벗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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