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시험장에 대해 생각한다. 무거운 공기, 숨 막히는 압박감, 몸에 맞지 않은 정장 차림. 이제는 익숙할법한 풍경인데도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말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매번 새롭게 부담스럽다.
유일하게 비슷한 점이 있다면 항상 내 옆에서 나처럼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 몇몇 경쟁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와의 새로운 만남인데도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드는 건, 두 사람이 위태위태한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지옥으로 가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 같은 거랄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불안감을 느낄 기회도 많이 줄었다. 예전부터 찾기 어려웠던 입사공고가 코로나 19로 인해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면접은커녕 서류전형 합격에도 감사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이 때문에 좌절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최종합격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서류조차 떨어진 건 충격이네요’ 내가 가입한 취업 커뮤니티에는 이런 비슷한 부류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온다. 서류에서 떨어진 이들은 어떤 스펙을 보강해야 할지 묻곤 하는데, 그들이 밝힌 스펙은 이미 최상위권 수준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뭘 더 보충해야 한다면, 회사가 뽑고자 하는 것은 신입사원이 아니라 ‘신’인 사원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좌절을 목격하고 또 실제로 겪으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붙잡는다. 우리가 반복해 치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시험들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 구조적으로 불완전한 시험의 본모습이 노력이란 이름으로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심지어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험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려 하면, 반대편에서는 대안을 가져오라며 압박한다.
‘그래서 뭐 시험을 없애자고? 너무 유토피아적인거 아니야?’ 시험제도의 완결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색깔론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 시험을 통과했던 기성세대들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조금만 참고 노력해봐. 시험만 통과하면 괜찮게 살아갈 수 있어’ 사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환경은 매우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력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아울러 버린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인 대다수의 청년도 시험 제도를 옹호하는데 목소리를 높인다는 거다. 시험 과정이 달라지면 이때까지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이 쓸모없어지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도 ‘노력’으로 포장된 모든 자산을 포기하는 과정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다. 결국 시험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저 낙오자, 또는 낙오 예정자의 신세 한탄 정도로만 치부된다.
수많은 좌절과 일부의 성공이 시험제도를 공고하게 유지하면서, 기존의 시험신봉자들은 더욱 기분 좋은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계층 사다리를 발로 차고, 취업준비생에게 어려운 과제와 스펙을 요구하며 성벽을 높게 만든다. 채용 갑질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국민은행 입사시험’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들은 성벽이 높아지는 만큼 자신들의 권위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은 이제 인기있는 회사에서 두 달짜리 체험형 인턴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것을 요구받는다. 청년들이 인턴을 위해 어떤 기회들을 버리고 왔는지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노력의 일부일 뿐이므로.
자본주의 사회의 화려한 발전상에만 주목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처참한 결과를 원래 그런 것으로 이해한다.
시험을 통과한 사례만을 공정하다고 포장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타인에 대한 무례를 별거 아닌 거로 취급한다.
오찬호 -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시험을 치르지 말자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다. 기존 제도권에 편입되고 싶은 욕구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다. 다만 시험을 시험해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험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입사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한 번쯤 생각한다. 어쩌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 있다고. 떨어진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고.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뽑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작은 마인드 컨트롤은 내게 포기할 용기와 다시 도전할 용기를 준다.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에서 과감하게 도망칠 수 있는 용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시도해보고 싶은 용기 말이다. 이 두 가지의 용기는 나를 나답게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시험에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시험과 맞지 않아 스스로 떠난다는 사람의 자존감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