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빠나콘' 열여섯 번째 이야기
‘잘 모른다’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의 지적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깨닫게 될 때다. 타인의 지적은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릴 수 있지만,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약간의 자괴감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나의 모자람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왔다. 이제는 내 무지에 대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아직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오늘은 이 기억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의 기억이다. 엄마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아빠는 내게 엄마의 생일선물을 고민해보라며 용돈을 줬다. 엄마의 생일을 맞아, 가족끼리 조촐한 파티를 열 예정이었다. 마침 근처에 살던 이모네도 초대하기로 했다. 나는 형과 함께 집을 나섰다. 우리 둘은 함께 엄마 생일선물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호기롭게 집을 나선 모습과는 달리, 우리 형제는 뚜렷한 대안을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 인근 마트에서 즉흥적으로 선물을 사기로 했다.
마트에서도 마땅한 물건이 떠오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건 당연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작정 마트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선물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생일이 찾아왔다.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케이크에 꽂은 촛불을 꺼뜨리고 선물을 나누기로 했다. 나와 우리 형이 자신 있게 내민 선물을 보고 이모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엄마에게 건넨 건 ‘빨간 고무장갑’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라는 존재를 그저 엄마로만 여긴 게 틀림없다. 내게 밥을 해주고, 나를 보살펴주는 그런 존재. 그렇기 때문에 설거지에 필요한 고무장갑을 선물하면 엄마가 기뻐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 같다. 이렇듯 지극히 단순하고 1차원적인 생각 뒤에는 몇 가지의 사실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을 어린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위해서 그런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거라는 사실과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도 이날을 생각하면 어디론가 숨고 싶은 생각이 든다. 덤블도어가 기억을 지우듯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 기억 덕분에 깨달은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무지는 때로 비극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건넨 선물을 보고 이모는 쓴웃음을 지었고, 아빠는 핀잔을 줬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마음이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의 멋쩍은 듯한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날을 떠올리면 더 부끄럽고 미안하다.
무지가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더 공부한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 함부로 단정 짓고 평가내리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를 위해서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 지금도 이 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빨간 고무장갑’을 선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글을 쓰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 단기간에 똑똑해지지는 못하더라도 배움에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건 나의 이타적 공부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사회에서 이타적 지식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정답이고 다른 사람은 ‘뭘 몰라서’ 그렇게 행동한다는 무지의 착각에서 벗어나, 나의 말과 행동이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살아갈수록, 잘 모른다고 인정하는 행동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