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빠나콘' 열네 번째 이야기
강요받은 편리함
어제 시킨 물건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초조할 때면, 나는 가끔 편리함에 적응해버렸다고 생각한다.
40분 전 시킨 배달음식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신경 쓰일 때면, 나는 가끔 편리함에 적응해버렸다고 생각한다. 빠르고 편리한 배송방식이 삶에 미친 영향 탓이다.
어린 시절, MP3가 무척 갖고 싶었다. 그 당시 MP3의 입지는 지금의 신형 아이패드와 맞먹는 수준이었는데,
용량은 자그마치 512MB나 됐다. 하지만 그 당시 MP3의 가격은 결코 나 혼자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에는 옥션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였는데, 즉시 구매를 하지 않으면 경매를 통해 조금이나마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었다.
MP3를 최대한 싸게 사고자, 경매기간이 가장 길게 남아있는 상품에 입찰했다. 5일 후에도 나보다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이 없으면, 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MP3를 살 수 있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입찰가격을 매번 확인하는 게 주요 일과가 됐다. 입찰 후 3일이 지나도 나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MP3를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것도 낮은 가격으로 말이다.
하지만 경매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높게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입찰했던 가격은 이미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 됐다. 결국 마감 시간에 다다를 무렵에는 즉시 구매가와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됐다. 장장 5일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MP3를 사야 했다. 엄마는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물건을 결제해줬다. 결제 이후 배송에 걸리는 시간은 2~3일 남짓, 입찰부터 배송까지 딱 일주일이 걸린 셈이다.
MP3를 손에 넣기까지의 기다림, 택배를 초조하기 기다리는 마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여는 그 설렘, 이 모든 것들은 지금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지금은 쿠팡에서 원터치 결제로 물건을 사고, 아침에 주문해 저녁에 물건을 받아본다. 과거와 달리 택배가 어디쯤 왔는지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책이든, 음식이든, 상품이든, 소비가 일상화되면서 소비가 주는 만족감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느끼는 지점이다. 빠른 배송이 과거에는 큰 장점이었다면, 지금은 빠른 배송이 없는 상품은 큰 결점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그렇게 빠른 것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됐을까.
여러 기사에서 배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접한다. 그들은 밤을 새워 상품을 운송하고, 위태롭게 음식을 배달하지만, 과거와 똑같은 배송료를 받는다. 배송을 빨리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는 일상적인 경우가 많고, 과로사 문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그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소비가 일상화된 분위기 속에서 이득을 얻는 집단은 소비자도, 배송 노동자도 아니다. 상품을 빠르게 팔아치우고 새로운 상품을 계속 개발해내는 기업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간다.
말하자면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소비 풍토는 소비자로부터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내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쩌면 편리함을 강요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어쩌면 상품의 소비에만 영향을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유튜브와 같은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러한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1시간 30분짜리 영화 한 편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20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여러 편 보는 건 쉽다. 책을 한 권 읽거나 영화를 한 편 다 보기 위해서는 깊은 결심을 해야 하지만, 책 리뷰나 영화 리뷰 영상은 쉽게 클릭한다.
우리 삶에서 진득하게 무엇을 하는 건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MP3를 사기 전, 사전정보를 수없이 찾아보았던 나를 기억한다. 성능이면 성능, 매뉴얼이면 매뉴얼, 물건을 결제하기 전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한 후 구매를 결정했다. 이게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이 물건보다 좋은 건 없는지를 따질 수 있었던 건 상품이 내게 도착하기 전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껏해야 리뷰 한 두 개를 읽는 정도 수준에서 그친다. 어차피 물건은 내일이면 도착할 것이므로, 실제로 몇 번 써본 뒤 좋지 않으면 또 다른 물건을 사면 되니까.
강요받는 편리함의 무서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빠른 배송을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배송 노동자들의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GPS로 내려다본다.
택배 노동자들이 택배 없는 날을 요구할 때면, 나는 가끔 편리함에 적응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쉬는 날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하지는 않았지만, 익숙해져 버린 편리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끔 공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자각, 10분짜리 책 리뷰가 아니라, 몇 시간짜리 책 한 권을 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삶이 더 바빠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