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빠나콘' 열여덟 번째 이야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중 ‘박’이라는 친구가 있다. 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그 친구의 어린 시절 별명은 바로 ‘덧니몬’이었다. 말쑥한 외모를 지녔지만, 유난히 덧니가 돋보였던 탓이다. 남의 외모를 가지고 그런 별명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지만, 그때는 귀여운 애칭 정도로 생각했다.
박 역시도 이에 대해 불만을 느끼진 않았다. 그는 나를 이미 난쟁이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박의 착한 성격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덩치가 컸지만 한 번도 이를 이용해 누구를 괴롭힌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친구들로부터 작은 친구들을 보호해줬다.
그래서인지 소위 ‘일진’들은 덧니몬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온갖 종류의 폭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박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그 뒤로도 항상 함께 다녔다.
박의 성격은 그의 가정환경에서 기인하는 것 같았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삼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항상 대부분을 양보해야 했다. 형이라서, 또 동생이라서 그는 많은 것을 나누어줬다. 본인의 소유에 관해 주장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항상 ‘올곧음’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가 가끔 안쓰러울 정도였다.
박은 그럴 때마다 씩 웃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는 각자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대부분의 친구가 인문계 고등학교 중 어떤 고등학교에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그는 인문계를 갈지 실업계(지금은 특성화고로 바뀌었다)를 갈지 고민했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대학이 그에게는 꽤 무거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인근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이번에도 나와 내 친구들에게, ‘공부가 별로 재미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그리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작은 친구들을 보호해줬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의 시간은 중학생 때의 시간보다 훨씬 빨리 흘러갔고, 어느새 나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박은 20살이 되자마자 군대에 갔다. 전역 후 그는 학교에서 배운 용접기술을 활용해 바로 취업을 했다.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 그는 공장에서 땀을 흘리며 돈을 벌었다. 그는 그 돈으로 내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술을 사줬다. 힘들지 않냐고 내가 물을 때마다 그는 항상 그럭저럭 괜찮다고 답했다.
2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박은 내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공장에서 용접을 하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계속 일해, 너 나와서 뭐 하려고 그래”
그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조언’이랍시고 그에게 상처 되는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나는 왠지 그의 편을 들고 싶어졌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인의 의지대로 어떤 선택을 내려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선택이 어떤 것이라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박은 이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치아교정이었다. 치아 교정에는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었지만, 그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옷 사 입는 것도 아까워 꼭 필요할 때만 저가 브랜드를 찾던 그의 평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나도 이제 여친 만들어야지’ 그는 이에 깔린 철길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그의 표정에서는 만족감이 보이다 못해 흘러넘쳤다.
박은 현재 어떤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용접을 할 때보다 월급은 훨씬 적지만 그는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행복해한다. 또 친구 중 누군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의 돈을 가장 먼저 내어준다. 돈을 빌려주고 나면 자신은 매일 3,500원짜리 ‘치킨마요덮밥’만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그런 그를 나는 많이 의지한다.
덧니몬은 이제 사라졌다.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이리 빼고, 저리 뒤틀었더니 치아가 가지런해졌다. 이럴 때 보면 현대의학은 정말 여러모로 놀랍다. 그는 여자친구도 만들었다. 말주변도 없고, 재미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그가 여자친구를 사귀다니….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심지어 그녀가 예쁘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오마이갓.
박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조언에 대해 생각한다. 그에게 용접을 계속하라고 권유했던 친구들의 말을 떠올린다. 말이 가질 수 있는 무게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한다. 의도는 좋았겠지만, 친구들의 말속에는 박이 했던 고민의 흔적들이 반영되지 않았다. 박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몇 년씩이나 입고 있었고, 그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었다. 그저 지레짐작하고, 견뎌보라며 툭 뱉어냈을 뿐이다. 조언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내뱉을만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됐다.
혹시 앞으로 누군가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목청껏 설교하기보다 한 발짝 물러나고 싶다. 그리고는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에 대해 먼저 추켜세우고 싶다. 고생했다고, 고민하느라 애썼다고, 고민한 만큼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