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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Feb 13. 2021

<승리호>가 만든 참신한 진부함

영화 해석 및 리뷰 < 승리호, 2021 >


‘언젠가 승리의 발판이 될 최초의 패배’


씨네 21의 김철홍 평론가는 조성희 감독의 영화 <승리호>를 이렇게 평했다.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라는 메시지를 표방한 <승리호>가 완벽하진 않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나온 표현이다. 제작비, 기술력 등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생기는 제약을 고려했을 때 <승리호>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 더 잘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승리호>는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어버린 2092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제임스 설리반이라는 엘리트는 생존을 위해 우주 바깥에 UTS라는 인공 행성을 만들고 함께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초청해 UTS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 가난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지구에 그대로 남아있거나 우주 쓰레기 청소부가 되어 힘겹게 생활을 이어나간다. 우주 쓰레기 청소부 ‘승리호’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신한 진부함’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CG 등을 활용한 영상미도 과거 어느 영화보다 높은 수준을 보인다.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영화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진부한 전개들이 영화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 가령 태호(송중기 분)와 순이(오지율 분)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흰색 색감을 활용해 작위적으로 표현한 부분 등이 그렇다. 이외에도 스토리 전개에서 태호의 과거 회상신을 너무 길게 가져간 점도 아쉬웠다.


플롯설정은 감독의 재량권 안에 있지만 어색한 플롯설정이 영화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승리호>의 경우 여러 클리셰가 반복되면서 스토리 진행에 있어 의문점이 많이 남았다.

대표적인 것이 설리반이라는 빌런의 캐릭터 설정,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주 청소부들끼리 협력 등이다.





먼저 설리반의 경우 애매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고 150년 이상 삶을 살아온 그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설정은 다소 평면적이다. 또 그는 흥분할 때마다 혈관이 부푼다는 설정을 하고 있는데, 이게 왜 그런 건지에 대한 배경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섬세하지 못한 캐릭터 설정으로 영화 속에서는 설리반의 존재보다 ‘무인격추기’가 더욱더 무서운 존재처럼 비치기도 한다.


우주 청소부들의 협력도 다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영화 초반 ‘승리호’의 팀원들은 다른 우주 청소부들이 노리고 있던 쓰레기를 탈취하는 등 다소 거친 이미지로 그려진다. 다른 우주 청소부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행위를 자주 해온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장 선장(김태리 분)의 말에 급작스레 마음을 바꾼다. 그 장면은 꽤 이질적이어서, 그들의 모습이 꼭 ‘<어벤져스>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로봇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방금 지적했던 두 부분이 플롯설정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든 포인트는 의외로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영화를 그려낸 모습이었다.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적 특징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형 SF라는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성희 감독의 섬세함은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남성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은 업동이(유해진 분)를 여성 로봇으로 묘사한 것뿐 아니라, 여성의 외모로 변신을 한 업동이에게 목소리를 바꾸지 말라고 하는 장면을 통해 이 사실이 잘 드러난다. 남, 여의 구분이 뚜렷한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트랜스젠더까지 아우르는 설정이 배려 깊다. 또 꽃님(박예린 분)이와 가족이 된 승리호 식구들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와 유사한 이유다. 정상 가족 프레임에서 벗어나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가족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을 시대상을 반영해 잘 표현해냈다.


‘언젠가 승리의 발판이 될 최초의 패배’


이 수식어를 만족하기 위해 한국 SF 영화가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많다. 가장 필요한 것은 캐릭터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장 선장, 태호, 타이거 박(진선규 분), 꽃님 등은 섬세한 캐릭터 묘사가 뒷받침된다면 하나하나 특색있는 캐릭터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 할리우드 영화의 히어로가 영화 바깥에서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개성’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파적인 스토리가 아닌, 개개인의 능력과 다층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캐릭터 묘사가 뒷받침된다면 앞으로 한국 SF 영화는 충분히 기대해볼 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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