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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Mar 14. 2021

잔잔하면서도 생명력 있는 <미나리>

영화 해석 및 리뷰 < 미나리, 2020 >


최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는 등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미나리>는 생존을 위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가족이 미국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그들은 미나리라는 식물처럼 끈질기게 생존하면서도 쓰임새 있는 삶을 살길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효율성과 생존, 가족과 행복 등 여러 가지 가치에서 고민하는 흔적을 담은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인 셈이다.

<미나리>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이창동 감독이다. <버닝>의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라는 소재로 가족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시>와 닮았다. 게다가 시퀀스마다 비유와 상징을 적절히 녹여 관객들에게 고민을 던져준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정이삭 감독의 전작들과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대조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는 물이다. 영화 <미나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물'을 찾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물이 등장한다. 제이콥(스티븐 연)이 농사를 짓기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물부터 데이빗(앨런 김)이 자주 마시는 마운틴듀,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한국에서 가져온 한약까지, 영화는 반복해서 물을 주요 소재로 사용할 거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은 흔히 생명을 의미한다. 결국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생존을 위해 달려간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을 먼저 살펴보자면 영화가 강조하는 주제는 크게 생명(생존)과 가족 두 가지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감독은 가족이라는 소재를 더욱 중요시하는 듯하다. 영화 후반부에서 제이콥이 애써 기른 농작물을 다 불태워버리는 설정을 유지하는 것도, 새로운 물을 찾아 다 함께 재출발하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도. 자칫 떨어져 살아갈 수도 있었던 가족을 한곳에 묶어놓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결국 얕은 성공보다 깊은 가족애가 더 중요하다는 말 아닐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특히 제이콥의 경우 '남자'와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추측할만한 연출들이 좋았다. 병아리 분류공장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며 폐기되는 수평아리들을 이야기할 때나, 장남으로서 가진 돈을 다 줬다고 이야기하는 부분 등 흔히 가부장제 사회 남성의 어려움을 잘 드러낸 것 같다. 그러나 1980년대 배경의 남성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인지 모니카(한예리)의 캐릭터나 할머니의 캐릭터 묘사는 다소 구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왜 모니카가 아칸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또 마지막에는 왜 함께 농사를 위한 물을 찾고 있는 건지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각본에서는 다소 진부한 측면이 있다. 물이라는 소재가 나올 때부터 불이 등장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하고 특히 할머니가 혼자 남겨져 무엇인가를 소각하고 있을 때부터는 앞으로의 전개가 쉽게 드러난다. 심장이 좋지 않은 아이가 살아가는 방식, 또 그 병이 나아가는 과정도 어디선가 본듯한 이미지를 준다. 조금은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카메라 등 연출에 있어서는 신경을 꽤 많이 쓴 듯하다. 제이콥의 심경변화를 보여줄 때는 마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 같이 로우 앵글 쇼트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카메라 연출은 등장인물의 불안한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 준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드러나는 딥포커스, 핸드헬드 등 기법도 적절하게 사용돼 몰입감을 높였다.

영화 <미나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보편성에 있을 것 같다. 생존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많은 사람들,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을 찾고 자신의 현실에 끼워 맞춰보기 때문이다. 영화 속 현실감 높은 부부싸움 장면이나 생계의 어려움이 이러한 공감대 형성을 더욱 쉽게 만들어준다. 결국 제이콥과 모니카도, 또 십자가를 지고 교회로 향하는 폴(윌 패튼)도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도 이러한 그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화는 짠하거나 안타까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하나같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윤여정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윤 배우는 낯선 미국 땅을 방문한 할머니라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설정 속에서도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듯하다. 낯선 환경에 주눅들어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의 제목 <미나리>가 의미하는 바와 똑 닮았다. 영화의 분위기를 잘 녹여낸 연기를 보여준 윤 배우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 밖에도 한예리 배우에게서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연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고, 스티븐 연 배우에게서는 가장의 무게가 정말로 느껴졌다. 이처럼 반짝이는 캐릭터들이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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