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브로커, 2022 >
'가족 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자신의 주특기인 가족이라는 소재로 한국을 찾았다.
역대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의 경우 CJ 감성이 묻은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감독이 꺼내놓는 이야기는 여전히 날카롭고 탄탄했다.
*스포주의
영화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미혼모 소영(이지은 분)이 인근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곳에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몰래 빼돌려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이 있다.
이들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우성'을 팔기 위해 상현이 운영하는 세탁소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다음 날 교회에 소영이 다시 찾아오고, 발각 위기에 놓인 상현과 동수는
우성을 판매하면 돈을 받을 수 있는 사실을 미끼로 소영을 설득해 함께 아이를 구입해 줄 '고객'을 찾아다닌다.
한편 상현의 뒤를 쫓던 수진(배두나 분)과 이형사(이주영 분)이 이들의 범죄현장을 덮치기 위해 이들을 따라간다.
영화의 제목은 브로커로 아이를 판매하려는 상현과 동수를 가리킨다. 베이비박스에 담긴 아이를 몰래 빼돌려 다른 가족에게 판매하려는 이들을 향해 소영은 직접 브로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이내 소영은 상현, 동수와 함께 자신의 아이를 판매하기로 하면서 브로커를 자처한다.
표면적으로 영화 속 브로커는 두 사람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브로커가 더 등장한다.
상현과 동수가 아이를 판매하는 현장을 덮치기 위한 수진의 행동이 브로커와 닮았다.
체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함정수사를 서슴지 않는 수진의 모습에서 돈을 향한 상현의 욕망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아이를 파는 걸 원했던 건 자신뿐이었던 것 같다는 수진의 독백 장면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기를 수단으로 이용해 돈이나 신념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브로커라고 지칭할 수 있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평소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작품성이 아쉽다고 평가하고 싶다.
감독의 장점은 은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직접적인 상황 전개가 많았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뚝뚝 끊어지는 서사 구조나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이 되는 부분에서 많이 아쉬웠다.
과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나 '어느 가족'에서 돋보였던 훌륭한 쇼트들도 이번 작품에서는 크게 찾아볼 수 없어 더욱 그랬다.
인물 설정도 썩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었다. 가령 동수의 경우 보육원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특징을 갖지 못한 인물로 묘사됐다. 동수라는 캐릭터 자체가 납작한 캐릭터로 묘사되다 보니
동수라는 캐릭터를 제외하고서도 스토리 전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히려 동수보다는 해진이라는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평소 고레에다 감독이 캐릭터 하나하나마다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비교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 대목이다.
한국 배우에다 한국에서 촬영한 것 외에도 연출에서도 왠지 모르게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많이 난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과, 버려지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어느 가족'과 브로커의 유사한 설정이다.
하지만 어느 가족과 비교해보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혈연 가족도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느 가족의 경우, 등장인물들이 함께 살게 된 계기나 살아가면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각각의 쇼트 속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했고 처음에는 어색한 듯 보였지만 이내 함께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혈연 동거인에서 비혈연 가족이 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차근차근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브로커의 경우 이러한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영화 속 대부분은 아이를 판매하러 가는 과정에 집중됐으며, 그 속에서 아기인 우성과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진 부분이 적었다.
이 때문에 브로커들이 경찰에 잡혀가고 우성이 행복해지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감동적이지 않았다.
물론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는 대상이 갓난아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겠으나 어느 가족의 할머니(키키 키린 분)처럼 아빠(릴리 프랭키 분)처럼 감정선을 깊게 만들어내는 인물이 없었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이렇듯 캐릭터 사이의 유대관계가 끈끈하지 않다 보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불분명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브로커와 어느 가족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가족에서 노부요 시바 타가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족을 폄하하는 경찰에게 격렬하게 분노하는 장면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있다.
또 우성을 지켜보지도 않던 소영이 우성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에도 이러한 이유가 담겨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고리는 피가 아닌 시간이 만들어내는 셈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주어진 가족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 배우의 이야기를 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 송 배우는 기생충에서의 '기택'과 유사하지만 한층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감히 송 배우보다 상현이라는 인물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음침하면서도 밝고 억척스러우면서도 모자란 구석이 있는 그런 캐릭터를 한 명의 인물로 잘 버무려낸 송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