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무용담 : 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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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맛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나는 동네 식당을 주로 찾는다.
약간 허름해 보이는 가게의 외경, 투박한 간판 문구와 글자체, 특색 없는 인테리어까지.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가게들은 항상 어정쩡하게 나를 반긴다.
오늘 아침 식사를 위해 찾은 ‘삼거리 돼지국밥’도 비슷한 유형의 밥집이었다.
좁은 세 갈래길 앞쪽에 있다는 이유로 지어진 것 같은 ‘삼거리’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만약 이 가게가 기차역 앞에 있었다면 가게 이름은 틀림없이 ‘ㅇㅇ역 돼지국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이른 시간에 가게를 찾은 탓인지 가게 안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좁은 가게 한 켠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는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를 건넸지만 반가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사장님이자 요리사인 아주머니는 나를 응대하면서도 지금껏 보고 있던 건강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문을 마친 뒤 수저를 찾기 위해 테이블 이리 저리를 살폈다. 그때 수저 대신 내 눈에 들어온 건 테이블 위에 죽어있는 모기 1마리였다. 가만히 지켜보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녀석은 완전히 자신의 모기생을 마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죽은 사람에게 흰 천을 덮어주듯 일회용 물티슈를 꺼내 모기의 얼굴을 덮어주었다.
평소 유난 떠는 성격은 아니지만 식당에서 나온 모기 시체를 대수롭지 않게 치우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왠지 조금 이상했다. 가게 위생에 대해 불만을 가질법도 하지만, 밥 먹기 전에 모기를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산스러움’과는 한층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새 나는 시끄러운 술집보다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더 신나는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거에 비해 우렁찬 자동차 배기음과 오토바이 모터 소리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됐다.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2시간씩 줄을 기다려야 하는 맛집보다 아무도 찾지 않아 단골손님과 사장님이 차를 마시고 있는 그런 한적한 식당의 분위기가 좋다. 나이 든다는 게 이런 걸까 싶다.
“빨리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아저씨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다. 20대 초반의 나는 누군가에게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무언갈 도와줘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는 아이에게도
“어 그래 잘 가~ 근데 아저씨는 아니고 형아(오빠)야”라며 한 마디씩 말을 보태곤 했다. 아저씨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어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저씨란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애써 이를 부정하는 그런 부산스러움을 내려놓은 사람들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레스토랑보다는 동네 식당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유니폼에, 영어와 불어 따위를 섞은 메뉴, 번쩍인 인테리어를 유지하면서 평생을 살 수 없으니 투박한 상호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메뉴, 테이블의 모기나 작은 머리카락을 대수롭지 않게 치워줄 수 있는 손님과 함께 세월을 보내는 게 더 익숙해지는 셈이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감(내려놓음)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쓸데없는 비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 택시기사와의 대화가 예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는 점. 편안한 마음으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 삶 전반에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어느새 아저씨 적령기가 되어가고 있는 나는,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꼬마에게 살짝 다가가 전과 다른 한마디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 그래 잘 가~ 근데 아저씨는 아니고 삼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