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고민

<생각 꾸러미>

by 스미스

올해였던가, 작년이었나. 명절을 맞아 고향 집에 들렀다. 타지역에서 혼자 지내는 삶이 익숙한 내게 고향 집은 그리우면서도 조금은 불편한 곳이다. 집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해지다가도, 사람이 모이는 공간의 그 부산함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식사를 마친 뒤 책을 읽는다는 명분으로 혼자 가방을 챙겨 카페를 가곤 한다.


그날도 카페에 갔다. 가방에는 읽다 만 에세이 한 권이 담겨 있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페, 공간이 탁 트여있으면서도 사람은 많지 않은 카페를 찾아 떠났다. 명절을 맞아 가게 안에는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았다.


자리를 찾아 앉고서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카톡을 남겼다. 시간이 되는 사람 있으면 얼굴이나 보자는 취지였다. 몇몇은 다른 약속이 있었고, 몇몇은 답장이 없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려던 참에, 한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가족과 점심을 마치고 곧 카페로 오겠다는 말이었다. 좋다고 답장을 남기고 책을 펼쳐 읽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나 지금 ㅇㅇ이랑 같이 있는데, 나도 가도 돼?" ㅇㅇ이는 그의 아내 이름이었다. 괜찮지. 나는 흔쾌히 말했다.


먼저 연락한 친구가 도착했고, 오랜만의 근황 토크가 오갔다. 잠시 뒤, 친구 부부와 함께 한 아이가 걸어왔다. 부부를 쏙 빼닮은 조그마한 공주님이었다. 친구의 아이는 친구 품에 안겨있을 때 잠시 봤었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제 부모님을 닮은 듯 잘 걷고, 잘 뛰고, 에너지가 넘쳤다. 카페 안의 어린이용 탁자 사이를 경주하듯 오가는 모습이 귀엽고도 놀라웠다. 작은 발로 카페 이곳 저곳을 통통 튀어다니며 뛰었다 걷기를 반복했다. 마치 세상이 온통 자기 놀이터인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로 넘어갔다. 공주님은 곧 어린이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자아이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라는 얘기는 또렷하다. 아이가 없는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했다.


친구 부부보다 앞서 도착한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터라 주제는 신혼여행, 예식 준비, 신혼집 이야기로 흘러갔다. 친구가 무어라 무어라 하면 친구 부부가 제법 진지한 얼굴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낯선 언어처럼 들렸다. 그들의 말은 마치 헬륨가스 풍선처럼 카페 안을 날아다녔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얼마 전 학부모들을 만나 ‘개근거지’라는 말을 처음 들은 날이 생각났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개근하면 ‘놀러도 안 다니는 집’이라고 놀림을 받는다는 뜻이란다. 한 학부모는 그 말을 아이가 듣는 게 무서워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고, 또 다른 부모는 그럴 형편이 안 돼 자신은 유치원에 계속 보내고 있다며 속상해했다.


불교 용어 중에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에는 저마다 때가 있다는 말이다. 좋았던 사이도, 나빴던 사이도 결국 흐르고 흘러 자연스럽게 맺고 끊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사람에게는 시절인연처럼 '시절고민'이 있는 것 같다. 그 시기엔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다른 고민에 자리를 내주는 것. 공부나 취업처럼 나를 옥죄던 고민도 결국 시간을 타고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취업이 인생의 전부로 느껴졌던 시절. 불안정한 채용 시장에서 탈락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은 끝났고, 그 자리를 새로운 고민이 채워갔다. 내 시절고민은 회사 생활, 인간관계 같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취업준비생 시절, 연애를 할지 말지 고민하던 내 친구는, 취업 이후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미 결혼을 한 친구에게는 2세가, 결혼을 준비 중인 친구는 웨딩 촬영과 결혼식이 그들의 시절고민이다. 친구가 결혼을 마치면 그의 시절고민은 곧 육아로 바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고민을 품고 살아간다.


시절고민이 바뀐다는 건 곧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 고민하던 그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이고, 어떤 직장을 택할지 고심하던 그 젊은 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무수한 고민을 하나씩 통과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예전에 했던 고민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는 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어쩌면 아쉬울 수도 있다. 성적, 진학, 꿈 같은 것들로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이 환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게 '시절고민'을 너무 어렵게 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지금 나를 억누르는 고민이 있다면, 그것에 '시절고민'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지금 이 고민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 이 시절도 언젠가 지나갈 거라는 다짐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때가 되면 흘러갈 고민이라면, 조금은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의 고민도 언젠가는 지나간 시절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절을 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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