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것들의 유용함 2

<생각 꾸러미>

by 스미스

어느 날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모임을 찾았다. 소모임 앱이 눈에 띄어 다운로드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설명이 마음을 끌었다. 부산에선 이런 모임을 찾기 쉽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호기심이 일었다.


이전에 다녀본 글쓰기 모임들은 어딘가 아쉬웠다. 만나서 각자 글을 쓰고, 시간이 끝나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누군가는 일기를, 누군가는 블로그 글을, 또 누군가는 시를 썼다. 나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 보니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집에서 혼자 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끊었다. 아마 내가 원했던 건 프로젝트팀 같은 결속감과 목적의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모임이 이 모임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 약간의 기대를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모임 장소는 한 공유오피스의 회의실이었다. 따뜻한 조명이 내려앉은, 10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타원형 원목 테이블. 그곳에 일곱 명이 모여 앉았다. 몇몇은 서로를 알아보며 인사를 나눴고 대부분은 나처럼 처음인 듯 낯선 표정으로 공간을 살피고 있었다. 나도 조심스레 자리에 앉아 공간 내부와 모임원들의 면면을 흘끔흘끔 살폈다.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성비였다. 대체로 글쓰기 모임은 여성 참여자가 많은 편인데, 이 모임에선 남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여성은 두 명, 남성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모임장인 여성분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모임 진행 방식을 설명했다. 그녀는 이 공유오피스에서 글을 쓰는 일을 한다고 했다. 평소엔 글을 쓰고, 머리를 식힐 겸 가끔 이런 모임을 연다고 했다.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이 휴식으로 또 글을 쓴다니. 특이한 사람이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쉬기 위해 글을 쓰러 온 거였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스타벅스에서 일한다는 사람, 공대생 등 자기소개가 스쳐 갔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평범한 직장에 다니면서 에세이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모임 규칙은 간단했다. 각자가 원하는 주제를 종이에 적어 모임장에게 건넨다. 모임장은 그것들을 섞어 임의로 하나씩 나눠준다. 받은 주제를 바탕으로 30분간 글을 쓰고, 이후 서로의 글을 돌려 읽으며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단순했지만 묘하게 흥미를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종이가 한곳에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첫 만남'이라는 주제를 써냈고, 내게 도착한 주제는 '만유인력'이었다. '만유인력이라...쉽지 않겠는데.' 하고 생각하며 휴대폰으로 단어의 정의를 찾아봤다.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 사전적 정의를 확인한 뒤, 무슨 글을 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사람과 사람 간의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손가락이 노트북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30분이 순식간에 흘렀다. 글을 다 쓴 나는 다시 놀랐다. 나 혼자만 노트북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손 글씨로, 각자의 노트에 조용히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조금 민망해졌다. 문명의 이기를 등에 업은 반칙왕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노트북이 아니었다면 썻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시간 내에 다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반칙왕의 자리를 받아들였다.


글을 다 쓴 뒤, 각자 쓴 종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 읽기 시작했다. 나도 노트를 꺼내 들었다. 누가 쓴 글인지 모르는 상황, 주제별로 피드백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받은 글을 읽자마자 또 한 번 놀랐다. 제시된 주제들이 정말 다양했다. 만유인력이 오히려 쉬운 축에 속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만큼 난해한 주제들이었다. 한 가지 기억나는 주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누군가에게 이런 주제를 던진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받아서 자기만의 글을 써낸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것도 손 글씨로.


글의 형식도 제각각이었다. 나는 에세이를 써 A4 용지 한 장을 거의 채웠지만, 대부분은 손바닥만 한 노트에 짧은 글을 써냈다. 어떤 이는 시였고, 또 다른 이는 일기처럼 느껴지는 글을 썼다. 공통의 양식도, 글쓰기 규칙도 없었다. 이곳의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풀어내는 수단 그걸로 충분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피드백 과정이었다. 나는 그동안 논술과 작문 시험을 준비하며 수많은 피드백을 주고받아왔다. 어떻게 하면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말을 건넬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런 조언이 상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뿌듯함도 느껴봤다. 글에 대한 피드백만큼은 웬만큼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글은 거들 뿐, 그들은 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문장 하나에서 삶과 관계, 자존감, 사회적 거리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글에 관심 없는 글쓰기 모임이라니. 머릿속은 글을 쓸 때보다 더 복잡해졌다.


냉정하게 말해, 그들 중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나는 그들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력이 부족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글 자체가 아니었다. 글은 매개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이야기하는 데 몰입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내 글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그들도 내가 했던 피드백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들은 분명 즐거워하고 있었다. 시를 곱씹으며 웃던 얼굴. 낯선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던 눈빛. 자신이 낸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설레던 목소리. 나는 그들이 신기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공대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희곡과 시나리오를 모으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시를 잘 쓰고 싶다는 사람, 일본 추리 소설을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글은 희미하게 잊혔지만, 그들이 했던 말은 또렷하게 남았다.


모임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섰을 때,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신기했다. 나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만 노력했지, 이렇게 글 쓰는 것 자체를 즐겼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그 모임에는 다시 참여하지 못했다. 시간이 맞지 않았고, 몇 번의 모임 끝에 모임장은 자신의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글쓰기 모임을 종료했다. 앱을 통해 그들이 마지막까지 모임을 이어가고, 아쉬움 속에 작별한 흔적을 봤다. 흥미로운 그들과의 만남은 결국 한 번에 그쳐야 했다.


서울에 오고 나서, 그 모임의 사람들이 문득 떠올랐다. 누군가는 여전히 손 글씨로 시를 쓰고 있을까. 또 누군가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는 글을 쓰고 있을까. 잘 쓰든, 잘 쓰지 못하든, 그 마음만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로 붐비는 버스 안에서, 수많은 발걸음이 오가는 서울역에서, 문득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돈, 집, 능력처럼 생존을 위해 유용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이 도시에서 그들이 생각난 건 아마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개발, 이익, 성취가 난무하는 이 도시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무용한 것들의 유용함이 다시 떠올랐다. 그날의 공간과 그 분위기가 마치 만유인력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그날의 그들처럼, 자칫 무용해 보일 수 있는 것들에 기꺼이 시간을 내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무수한 유용함 속에서도 무용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들의 무용함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만유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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