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이 대체한 것들

<생각 꾸러미>

by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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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기 앞에 세탁소 앞에서 내려주시면 돼요"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별명이 있었다. 진짜 별명은 아니고, 택시를 위한 별명이었다. 우리집은 대로변과 맞닿은 세탁소 옆에서 돌계단을 몇 개 올라가야 나오는 곳이어서, 나는 종종 "OO세탁소 윗집"이라고 집을 설명하곤 했다. 어릴 적 나는 부산 영도구에 살았는데, 엄마는 택시를 타면 늘 기사님에게 "배수지 위로 가서 OO세탁소 앞에서 내려주이소"라고 말했다. 기사님마다 의사소통에 작은 오류가 생기기도 했지만, 큰 아파트 이름 하나 쯤 대면 어찌저찌 집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울산으로 이사 온 뒤에는 초등학교 밑에 있는 주택에 살았다. 집 마당에는 장미나무가 몇 그루 있었고, 그때부터 우리 집의 별명은 'ㅇㅇ초등학교 밑 장미나무집'이 됐다. 이 별명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기사님에게는

집 바로 위에 있던 중국집 이름을 대며 그쪽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절 택시는 기사님과 손님의 협업이 중요했다. 어디서 꺾어 올라가야 하는지, 왜 이 골목 말고 저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초행길인 기사님이 길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아, 다른 기사님이나 근처 주민에게 길을 묻는 '파티플레이'가 이따금 벌어지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지 않아서였을까. 나의 택시 인생은 늘 "~삼거리 앞으로 가주세요", "~앞에서 내려주세요"로 점철돼 있었다.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인근의 큰 건물이나 상가 이름을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렇게 주변을 묘사해야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집 별명을 부를 일이 거의 없다. 서울로 이사온 뒤 나는 아예 집 별명을 짓는 걸 포기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카카오T로 택시를 불렀기 때문이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입력하면 이동시간과 대략적인 비용이 미리 표시된다. 구구절절 어디 앞에 내려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집 바로 앞에서 내릴 수도 있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목적지는 이미 기사님의 앱에 입력 돼있고, 연동된 네비게이션으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까지 알려준다. 최단 거리로 안내되는 경로 덕분에 다른 길로 돌아가는지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신통방통한 시스템이 활성화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집 별명을 만들지 않게 됐고, 어느 순간 이 방식이 당연해졌다.


얼마 전에는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 온 아빠, 큰아빠와 함께 식당에 갔다. 형이 직접 찾은 소고기집이었다.

꽤 인기 있는 맛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골랐을 텐데, 5시도 되기 전에 도착한 탓인지 가게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고기를 주문하려는데, 테이블 위로 우뚝 솟은 키오스크가 우리를 맞이했다. 아빠는 키오스크가 익숙하지 않은 듯 화면을 더듬더듬 눌렀다. 그 모습을 보며 아빠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했다. 신형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휴대폰을 바꾸고, 컴퓨터도 수시로 교체하며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던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큰아빠는 천천히라도 누르긴 한다며 아빠를 은근히 부러워했다.


고기를 주문하고 식사를 하던 중 아빠는 한쪽에 가만히 서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소주 하나만 주세요"

그러자 돌아 온 대답. "아 그건 키오스크로 주문하셔야 해요"

아빠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키오스크로 손을 옮겼다. 메인 메뉴, 사이드 메뉴가 뒤섞인 화면을 계속 넘기고서야 소주를 찾아 눌렀고, 그제서야 직원은 몸을 움직여 술을 가져다줬다. 아빠와 큰아빠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테이블 위에는 묘한 씁쓸함이 남아 있었다.


어제는 마트에서 와인을 계산하려는데 계산대에 직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셀프 계산대로 가서 바코드를 찍었지만, 연령 확인이 필요하다는 안내 문구가 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한 손님이 직원 카운터에서 스티커 하나를 꺼내 “이걸 찍으면 된다”며 건네줬다. 안내받은 대로 바코드 인식기에 스티커를 찍자 연령 확인이 해제됐고,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끝내 점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변화를 실감했다. 집을 부르던 별명이 사라진 것도,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밥을 먹고 물건을 사는 것도 예전에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 각종 물건을 결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주나 점 같은 것들까지 비대면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됐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스타벅스에서도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했다.


어쩌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편리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거절을 잘 못하고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성격 탓에, 온라인 쇼핑은 오히려 더 현명한 소비를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 냄새'는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 이웃에게 떡이나 음식 따위를 돌리던 풍경은커녕,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몇 년을 살아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괜히 몸을 피하게 되고, 말을 걸어오면 경계부터 하게 된다. 길을 묻는 사람 앞에서조차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 아는 것도 모른다고 지나친 적도 있다. 그마저도 불편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달린 이어폰과 헤드셋을 낀 사람들이 어디서든 쉽게 보인다.


기술의 변화를 내가 원해서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적응해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편해졌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과 마주할 일은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집에 가기 위해 주변을 설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사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던 순간들, 눈을 맞추던 시간들, 오가던 대화들이 함께 사라졌다. 사람 사이의 대화가 어색해졌고, 편리해진 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멀어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변화로 인간의 온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전보다 더 추운 겨울이 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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