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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an 09. 2022

만학도 할머니로부터 배운
특별한 평범함

<생각 꾸러미>

이전을 앞둔 샛별야학교의 모습

일요일 아침은 주로 팟캐스트와 함께 시작한다. 이날만큼은 억지로 잠을 깨우는 알람소리 대신 점차 밝아오는 햇볕 덕분에 눈을 뜬다. 기분 좋게 몸을 뒤척이면서 휴대전화를 찾고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킨다.

휴대폰에서는 곧 사근사근한 말소리가 새어 나온다. 기자들이 책을 읽어주는'골라듣는 뉴스룸-북적북적'이다.

침대에 누워 누군가 나긋한 목소리로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다 보면 마치 잔잔히 물이 흐르는 계곡에 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요일 아침이 주는 달콤함이다.


마음을 깨우는 낭독 소리가 끝날 때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쌓아뒀던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세탁 버튼을 누른다. '윙윙'하는 소리와 함께 세탁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진공청소기를 붙잡는다. 지금부터는 몸이 조금씩 바빠지는 타이밍이다. 청소기 소리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고, 바닥을 닦는 걸레를 몇 차례 빨다 보면 어느새 몸은 완전히 깨어있다. 청소 후에 쌓여있던 그릇까지 모두 씻고 나면, 보통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일을 묵묵히 해 온 어머니가 그 어떤 위인보다 위대하게 보이는 순간이다. 평범함에 대해 생각하다 최근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샛별야학' 이야기에 가닿았다.


지난달 찾은 샛별야학은 쓰러질 듯 허름한 건물에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오래된 철문은 건물의 나이를 보여주듯 낡아 있었고, 건물 내부에서는 곳곳에 물이 샌 흔적도 보였다. 학교 건물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도였다. 1983년 개교해 지금까지 600명 이상의 만학도를 길러 온 샛별야학은 최근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학교는 점차 낡아가고 있었지만 야학교가 전액 무료로 운영되는 탓에 이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물이 새는 곳에는 물받이를 갖다 놓고, 교장 선생님이 구멍 난 곳을 찾아내 임시로 메우는 것이 전부였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학생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50명 이상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학습 환경을 위해서도 학교 이전은 꼭 필요해 보였다.


취재를 위해 야학교에 다니는 한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자신을 중등반 반장이라고 밝힌 70대 할머니는 통화 내내 수줍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나이 먹어서 공부한다고 말하는 게 쑥스럽기도 하지만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면서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초등반을 졸업하고 중등반 반장이 됐다"고 말했다. 통화를 이어가는 내내 할머니의 목소리에서는 생기가 묻어났다. 요즈음에는 김장 시즌을 맞아 학급 친구들이 자주 결석해 아쉽다는 말을 남기는 할머니에게서는 왠지 모를 귀여움도 느껴졌다.


다행히 취재 이후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야학교에 사용해달라며 구청에 500만 원짜리 수표를 놓고 갔고, 구의회와 구청 등 관계기관도 샛별야학교의 이전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나는 부끄럽지만 술김에 샛별야학을 지켜달라며 구청 관계자에게 문자를 보낼 만큼 어느새 이 사안에 깊이 빠져있었다. 결국 이러한 노력 덕분에 샛별야학은 다른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고, 넉넉하진 않지만 운영비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추운 겨울, 모처럼 전하는 따뜻한 소식이었다.


평범함을 떠올릴 때면 이날 통화했던 '반장 할머니'의 수줍은 목소리가 들린다. 남들처럼 배우는 것이 목표라는 할머니의 소박한 바람이 참으로 귀하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노력해야 겨우 이룰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나의 환경에 감사한다.


평범함보다 특별함을 먼저 찾아야 하는 직업을 맡은 나는, 가끔 평범함을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개인에게도 특별함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평범함이 과도하게 평가절하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평범해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는다. 진학, 취업, 결혼, 내집 마련까지...단순하고 평이해 보이는 과정 중 정말로 쉽게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특별해야한다는 압박감에 평범하고 소중한 것들을 낮추어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땐, 요리와 청소를 해보길 권한다. 무엇인가를 만들어 먹기 위해 재료를 다듬고, 씻고, 삶는 순간순간이 특별해 보일지 모른다. 또 먹은 음식을 정리하고 집을 치우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기'라는 어려운 미션을 성공한 당신이 대견해질 것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카페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특별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특별함뿐만 아니라 평범함의 기준조차 높아지고 있는 지금,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나는 언제나처럼 이러한 보통사람을 대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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