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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an 16. 2022

실패를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생각 꾸러미>

"어.. 경륜아 니 기사 때문에 뭐가 바뀌었는지 아나?"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운전을 하던 내게, 회사 선배가 전화를 걸어 왔다. 통화 속 선배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설렘이 묻어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즐거운 소식을 전하려는 듯했다.

선배는 내게 "국방부가 변론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짧게 전했다. 이는 내게 참 귀한 소식이었다. 선배는 이날 '구평동 산사태'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 재판에 참석했다.


산사태 사고가 발생한 사하구 구평동 사진

사건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은 내가 구평동 산사태 사건과 관련한 취재를 하기로 한 날이다. 구평동 산사태 사건을 짧게 설명하자면 2019년 발생한 산사태로 부산 사하구 구평동 인근 주민 4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사고다. 이 끔찍한 사고는 당시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언론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파장이 컸다.

산사태가 발생한 장소는 육군 소속 한 부대의 예비군 훈련장 인근으로, 당시 조사에서는 '배수로 등 국방부 측 관리 부실이 산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족과 사고 피해자들은 이를 근거로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에서 국방부 책임이 대부분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사과를 비롯한 공식적인 유감 표명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배상 비율 놓고 갈등하고 있던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는 관련 전문가를 섭외하는 등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지만 국방부는 사고 수습은커녕 책임을 회피하고자 재판을 길게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피해자 측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기사를 쓰기로 했다.


보도 이후 진행된 항소심 재판에서 국방부는 변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방부 측 입장을 대변해주던 전문가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관련 조언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국방부의 변론 요청으로 길어질 가능성이 컸던 재판은 국방부가 변론을 중단함에 따라 판결만을 앞두게 됐다.


국방부 측 전문가의 '개인적인 사정'에 내 취재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사를 써낸 내게는 뿌듯한 경험이었다. 취재를 위해 몇 차례 통화한 유족과 유족의 법률 대리인은 내게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고 몇 차례 반복해 말했다. 특히 이번 사고로 3명의 가족을 잃은 한 유족은 "덕분에 재판을 잘 마무리하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연신 고마워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공식적인 입장조차 내놓지 않고 있는 국방부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글을 길게 써 내려가긴 했지만 내 자랑을 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아니다. 다만 '도전이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기사를 준비할 무렵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다.

'변론은 국방부의 권리인데, 국방부가 변론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기사가 나간 이후에도 국방부 측 변론은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실효성 측면에서도 고민한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사고를 계속 지켜보고, 결과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국방부에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어젠다 키핑'과 같은 거창한 용어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론보다는 마음이 시키는 것에 따라 행동했다. 뭐 이유야 어쨌든 결과가 다행스러워 매우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도전이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특히 도전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한다면 아주 작은 움직임도 훌륭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직 살아온 삶은 길지 않지만 작은 움직임이 또 다른 움직임을 낳고, 결국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다. 도전이 꼭 목표를 이뤄주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이어준다고 믿는다. 도전하려는 목표가 남한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모든 도전은 권장되어야 한다.


혼자서 요가를 시작한 지 어느덧 2개월이 넘었다.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어느새 유튜브 속 여러 자세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다(물론 아직 초급 수준의 자세만을 따라 하고 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구부정한 자세를 바른 자세로 바꾸고 직업병 수준인 거북목을 교정하는 일은 아직 한참 더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해나가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이렇듯 느릿느릿하면서도 묵직한 것이 내가 느낀 도전의 아름다움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가 느낀 도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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