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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Feb 06. 2022

혼자가 되고싶어

<생각 꾸러미>


설이나 추석처럼 명절을 앞둔 나에게는 두 가지의 마음이 든다. 반가움과 귀찮음이다.


먼저 가족을 만나러 가는 반가움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친척 집을 방문했던 기억에서 비롯된 이 마음은 여전히 명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으로 남았다. 친가에서 1박, 외가에서 1박, 이렇게 2박 3일의 일정으로 이뤄지던 연례 행사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차 기간이 짧아졌다. 언제부턴가 친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외가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오게 됐고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은 가족끼리 조촐하게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이마저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설 당일에 출발해 친가와 외가 모두 인사만 드리고 돌아오는 여정으로 바뀌었다. 짧은 방문 기간 탓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도 서먹한 분위기에 휩싸이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부재와 친척들의 이사 등으로 이제는 명절에도 친가나 외가를 방문하지 않게 됐다. 한때 시끌벅적하던 우리의 가족 모임은 같은 지역에 사는 친척들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것으로 간소화됐다. 물론 가족 간에도 모이는 것을 자제하라는 코로나19의 준엄한 명령 탓도 있었다.


친척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명절마다 사촌과 만나 침대에서 레슬링을 하거나 함께 PC방을 가던 기억도 점차 사라졌다. 사촌과 만나 놀기 위해 명절 전날부터 내가 가진 장난감을 바리바리 싸던 기억도 함께 흐려졌다.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인근 마트에서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를 사 먹던 기억도 지워진 건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내가 즐거워했던 왁자지껄함이 어느새 부담으로 다가왔고, 명절을 대하는 '반가움'의 기억은 이렇게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명절에 대해 느끼는 기대감이 줄어들수록 귀찮음은 커졌다. 나는 공부를 핑계로 2박 3일씩 소요되던 명절 일정을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고 이런 내 전략이 성공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전략이 한 번 먹혀들어가자 나는 비슷한 전술을 계속 사용하기도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져가서 명절 일정이 하루가 돼버린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설날도 꼭 그런 날이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울산으로 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들었지만 가족들과 만난다는 반가움보다는 귀찮음이 더 컸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진 나에게는 가족모임조차 에너지가 드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나는 구제가 어려운 심각한 외톨이가 돼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이런 마음을 접어두고 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할까 친구들과의 약속도 여럿 잡았다. 집에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친구들과 만나거나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집에 도착했고 가족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반겨주었다.


예감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쉬고 있다기보다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런 행동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마음이 계속 분주했다. 이런 내 마음은 친척이 모인 저녁 자리를 지나면서 더욱 번잡해졌다.


"혼자가 되고 싶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더 가족과 함께 보냈다. 낮에는 혼자 카페에 머물면서 책을 읽거나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혼자만의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한 후 가족과 함께하면 그런대로 지낼만했다. 혼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없었지만 그곳을 뛰쳐나가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나를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이 명절을 대하는 태도가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과 에너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명절을 기다리던 내 어린 시절 마음과 비슷해 보였다. 명절 전날 느꼈던 그 설렘을 어른이 된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지만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흔히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관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어린 시절 폭력을 겪어 온 아이가 자라 폭력과 쉽게 친해지듯 경험이 사고를 좌지우지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경험과 생각이 관계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해지고, 소수와의 대화가 편해진 나에게는 왁자지껄한 가족의 분위기가 낯선 환경이 돼버린 것 같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오래 자라온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언제부터 귀찮음이 반가움을 눌러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명절 특유의 시끌벅적함이 이제는 마냥 반갑지 않다.


나이가 더 들면 가족과의 만남이 더욱 자연스러워질까? 혼자가 편해진 일상에서 시끌벅적함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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