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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Mar 20. 2022

실패는 쓰지만 도움이 된다

<생각 꾸러미>

어린 시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대화가 중단되고, 마치 정지화면이 된 것처럼 시간이 멈추리라 생각했다. 영화 '트루먼 쇼'에 나오는 트루먼처럼 내 세상에서 주인공은 나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을 좋아했다.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그렇듯 나도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지만 아직 그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스파이더맨'의 손 모양을 몰래 흉내 내거나 문구점에서 구매한 '매직키드 마수리' 속 마법 목걸이를 소중히 여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항상 당당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끔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발생할 때면 영웅에게 주어진 시련이라 여겼고, 성취를 맞이할 때면 특별한 사람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 같아 그 누구보다 뿌듯했다.


하지만 시련이라고 느끼기에는 너무나 벅찬 '실패'를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내가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희미해졌다. 세상은 나를 빼고도 너무나 완전하게 이루어져 있었고 충분히 잘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을 자처하는 부품 한 조각에 불과한 것 같았다. 중2병이라는 다소 거친 용어를 알게 되면서 세상은 내 위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실패는 더욱 비참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시련이라고 넘길 수 있을 만한 것들도 따끔한 자기 비관으로 이어질 때도 많았다. '나의 환경은 왜 이런 것일까'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내가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 고통을 달고 사는 단역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제일 씁쓸했다.


최근 경험한 실패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나는 정정 보도 청구를 받았다. 지난해 쓴 기사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작성 당시 나는 기사의 주안점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확인을 여러 차례 거쳤지만 기사의 표현 중 일부 실수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할 말은 많았지만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정정 보도가 이뤄지게 됐다.


너무 억울했다. 단편적인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기사의 방향과 가치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황당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 누를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너무 화가 나고 분했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한동안 괴로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사건 이후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억울한 나의 마음에 공감해주며 내게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너의 글을 많이 보고 있다는 뜻"이라며 다독이기도 했다. 씁쓸하고 분한 마음이 한 번에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조금 누그러졌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위로의 말들이 이어지면서 마음은 안정감을 되찾았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기사를 쓰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고칠 수 있게 됐다. 조금 더 단단하게 취재하고 조금 더 확실하게 글을 쓰면서다. 설익은 글이 가져올 수 있는 피해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경험은 복리다'

어느 유튜버가 말했다. 다양한 경험이 가져올 수 있는 장점에 대한 설명이었다. 어떤 분야든 경험을 해보면 그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교훈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패가 있었으면 실패로 가는 과정에서 배운 교훈이 있었을 것이고, 성공했다면 그 역시 성공으로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가 이번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나의 취재, 보도 방식을 되돌아볼 수 있었을까?


실패는 쓰지만 도움이 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느낀 점이었다. 비록 뿌듯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뿌듯해질 수 있는 발판을 하나 더 마련한 셈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없었던 것처럼 지워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부작용 중 하나는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이라고 한다. 좌절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주인공으로서의 나를 맹신한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보면 주인공이 아니어서 행복한 날도 있다. 단역으로 살아가지만 그것이 꼭 불행을 의미하는 것 아니다. 비록 단역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스파이더맨을 꿈꾸지 않는다. 꼭 마법사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단역으로서의 내가 해내는 연기를 나의 카메라에 선명하게 담아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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