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꾸러미>
얼마 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학교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제 막 기자생활을 시작한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있을까 고민하긴 했지만 오히려 사회초년생인 내가 해줄 수 있을 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준 대학생들도 그런 점을 감안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으로 이를 승낙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탓에 나도 준비를 꽤 열심히 했다. 꼭 해줘야 할 것 같은 말을 생각하고 친구들이 보내온 글을 주의 깊게 읽으며 첨삭을 준비했다. 내가 하는 말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아직까지 감을 잡지 못한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강의라고 하기엔 보잘것없는 이 시간을 준비하면서 내 취업준비생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날 친구들은 열정적인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어떤 학생은 공책을 꺼내 이 얘기 저 얘기를 끄적였고,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이 평소 해왔던 고민이라며 내게 여러 가지를 묻기도 했다. 인원은 5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장난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진지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온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내 생각을 전달했다.
취업준비생들이 모여있는 모임답게 그들은 관심사는 미래의 직장에 있는 듯했다. 그들은 입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보수매체와 진보매체의 차이는 어떤지, 입사 이후 자신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등을 물었다. 나는 이들의 궁금증에 대해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질문과 답변이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이후 나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학교 밖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필요한 말이었지만 그 시절에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 말은 바로 "미래를 살기보다는 현재를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현재를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내가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반복해 찾아오는 좌절을 훌륭하게 견뎌낼 수 있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을 자주 맞게 된다. 각종 탈락 소식이 일상화되면서 좌절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익숙해진 좌절은 어느새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수십 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나와 지인들의 사례를 보고 느낀 감상이다.
좌절이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면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탈락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나의 출생부터 각종 환경을 적으로 돌리기 일쑤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상황은 왜 이런 거지"라고 자신을 질책하기도 한다. 낮아진 자존감 탓에 과도한 경쟁이 낳은 태생적 부작용을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셈이다.
입사 후 이어질 핑크빛 미래를 바라며 산다는 건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사회초년생이 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핑크빛 미래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고등학생 시절
"지금 열심히만 하면 대학교에서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입사 이후 일종의 '안정감'이 생긴 것은 맞지만 입사 이전 꿈꿧던 생활은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준비생 시절 조금 더 현재를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에 후회가 남는다.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서만 전력 질주하지 않고 여러 가지 가능성에도 도전해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의 경우를 보면 취업준비생 시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끄적이곤 했던 영화 리뷰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데, 이 부분을 조금 더 집중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그 순간들이 후회스럽기도 하다.
특히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게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게 하는 것 같아 아쉽다. 당장의 즐거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무모하다'고 평가하고 미래를 위해 최대한 절약하고 아끼는 것을 좋은 것으로 떠받드는 분위기가 이를 말해준다. 학생의 경우 대학을 위해, 청년의 경우 미래의 삶을 위해 너무 많은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 YOLO족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취업준비생 친구들이 조금 더 현재를 살면 좋겠다. 애써 자신을 억누르고 취업에 목매기보다는 갇혀있던 도서관에서 벗어나 영화와 공연도 보고 책도 읽는 등 자신의 삶을 더 잘 꾸려나갔으면 바람이다. 나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기억에 오롯이 남은 순간은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던 시간들
인 것 같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찾기 위해 눈에 보이는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권유하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