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의 일상은 책장에 꽂힌 만화책을 집어 드는 일부터 시작됐다. 그때의 나는 '탐정'이 되고 싶었는데 <꼬마탐정 OOO> 따위의 시리즈 만화를 즐겨 읽었다. 주로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어린이 탐정이 등장해 똑똑한 두뇌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줄거리다. 어른들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사건을 어린이 탐정이 자신감 있게 척척 풀어내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전에 사건에 쓰인 속임수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내가 떠오른다.
가끔은 성경 이야기가 담긴 만화책도 읽었다. <만화로 보는 성경 OOO> 따위의 이름을 가진 책이었는데, 꼬마였던 내가 굳이 성경 만화를 찾아 읽은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가 아니었다. 신비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성경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미자' 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미자 씨는 종종 나와 형을 데리고 동네 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 1권을 살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내가 어린이 탐정류의 만화책을 사면 형은 액션이 담긴 만화책을 고르는 식이었다. 그러다 가끔 내가 성경과 관련된 만화책을 집어 들었는데, 미자 씨는 그럴 때마다 책 두 권을 모두 살 수 있게 해줬다. 성경 만화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미자 씨의 마음에 든 것. 나는 한 권은 성경 만화를, 한 권은 어린이 탐정 만화를 고르며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렸다. 또다시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싶었던 나는 집에서 열심히 성경 만화를 읽는 '여우짓'을 하곤 했다. 미자 씨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같은 방을 쓰던 형은 이따금 눈치를 줬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서점과 도서관을 가까이했지만 글 쓰는 일은 유독 싫었다. 누군가가 써 놓은 글을 읽기는 쉬웠지만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것은 왠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 평가가 두려운 나머지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펜을 들었다가도, 한참을 멍하니 있거나 공책에 애꿎은 호빵맨만 그린 뒤 펜을 놓곤 했다. 글쓰기가 싫었던 계기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그때의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기는 다른 친구들처럼 선생님이 내주시는 방학 숙제가 아니었다. 뱃사람 '길남' 씨가 바다로 향하기 전 두 아들에게 내주는 유일한 임무였다. 길남 씨는 몇 개월간에 걸친 출항을 앞두고 항상 두 아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 '엄마 말을 잘 듣고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일기를 매일매일 쓸 것'을 주문했다. 그의 말에 자신있게 대답한 두 아들은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위기는 항상 갑작스레 찾아왔다. 미자 씨는 TV를 보던 우리 형제에게 "아빠가 다음 주나 그다음 주쯤 돌아오신다더라"하고 툭 내뱉곤 했다. 비상사이렌 소리보다 더욱 충격적인 그녀의 말은 우리 형제를 혼비백산하게 했다. 그때부터 나와 형의 머릿속은 일기 쓰기로 가득 찬다.
몇 개월 치의 일기를 한 주 만에 몰아 써야 하는 비상 상황을 맞은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다. 가장 어려운 것은 날씨를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으로 손쉽게 과거 날씨를 알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지나간 날씨를 알기 어려웠다. 엄마의 도움, 할머니의 도움, 과거의 기억을 모두 고려해 날씨를 정하고 그날 했던 일과를 만들어낸다. 몇 개월간의 일기를 몰아 쓰다 보니 분량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기억에만 의존한 일기는 '놀이터에서 놀았음', '형이랑 빨래터에 감', '개그콘서트를 봤음' 따위의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일주일간의 '일기 쓰기 프로젝트'를 마치면 길남 씨가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그와 함께 집에서 식사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기 검사다. 일기장을 가져와 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형제는 쭈뼛쭈뼛 일기장을 그에게 건넨다.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일기장을 살펴보던 그는 일기를 제때 쓴 게 맞냐며 되묻는다. 거짓말을 해 양심에 찔리는 것보다 혼나는 게 더 무서운 우리 형제는 제대로 일기를 썼다고 항변한다. 어설픈 거짓말에 돌아오는 건 불호령과 종아리 매질이다. 결국 있는 눈물, 없는 눈물을 모두 흘리고 나서야 잘못했다고 빈다.
집으로 돌아온 길남 씨는 피곤할 법도 하지만 우리 형제의 일기장을 유독 꼼꼼히 읽었다. 일요일인데 학교를 갔다거나, 2월 4일이 월요일인데 화요일로 적혀있다거나, 두 아들의 일기 내용이 완전히 같은 점을 발견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배에 책 여러 권을 꽂아두며 책을 읽곤 했던 그에게, 어린이들의 간단한 속임수는 너무 쉽게 발각될 만한 것이었다.
길남 씨는 일기 검사를 마친 뒤 우리 형제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일상이 매일 똑같고 사소한 일투성이더라도 느끼는 점을 조금씩이라도 적어보라는 취지였다. 일기 쓰기를 귀찮아하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생각을 적어보라고 다독였다. 그 이후에도 그가 우리에게 내준 숙제는 몇 번의 벼락치기와 몇 번의 꾸준함으로 완성됐지만, 길남 씨는 숙제 검사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었다. 가끔의 훈계와 가끔의 칭찬을 먹고 성장한 나는, 글이 취미가 되고 글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길남 씨의 숙제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글쓰기는 무서운 것에서 편안한 것이었다가 이제는 잘하고 싶은 일이 됐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일기 쓰기가 문득 하고 싶어져 조금이라도 매일 일기를 썼고, 군대에 들어가서는 아까운 하루하루의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컴컴한 침실에서 미니 손전등을 키고 일기를 썼다.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에도 생각을 적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됐다.
나는 길남 씨가 내준 숙제가 일종의 부채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몇 개월간 떨어져 있는 자식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었던 아버지가 생각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자식들의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불같이 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겠지. 투박한 표현 방식의 아버지는 낯 뜨거운 애정 표현 대신 일기를 꼼꼼히 보는 것으로 자식들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믿는다. 방학숙제보다 더 방학숙제 같았던 일기 쓰기가 그렇게나 싫었던 어린 자식들은 어느새 일기 쓰기를 시키는 마음을 이해해보려하고 있다.
"어…. 그래 너 책 썼다며 아빠한테도 몇 권 보내봐라"
지난해 아들이 독립출판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길남 씨는 아들에게 전화해 책을 집으로 몇 권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전화를 받은 아들은 거창한 책이 아니라 소박한 에세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길남 씨는 자신도 읽고 주변 사람 몇몇 사람에게 나눠주기로 했다며 기어코 책값을 지불했다. 책 몇 권을 실은 택배가 집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자, 길남 씨로부터 글 재밌게 읽었다며 계속 열심히 해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아들이 쓴 책을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흐뭇함을 숨기지 않았다는 게 전해들은 후문이다. 계속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글이 '부모님의 덕'이라고 말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