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뱃사람' 길남 씨와 '꽃다운 청춘' 미자 씨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길남 씨와 같은 고향 사람이었던 외할머니는 건실한 청년 길남 씨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고 자신의 셋째 딸에게 그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결혼은커녕 연애 생각조차 없었던 미자 씨는 외할머니의 반복된 요청에 길남 씨와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실제로 만나면 호감이 생기지 않겠냐는 기대도 잠시, 그는 미자 씨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미자 씨의 이상형은 그룹 'god'의 김태우같이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이었고, 마른 몸매에 키가 크지 않은 길남 씨는 그녀가 만족할 만한 풍채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미자 씨는 첫 만남부터 그에게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고 회상한다. 그가 하는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은 물론이고 다음번에 만나자는 이야기도 일부러 꺼내지 않았단다. 자신이 그에게 호감이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알아서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그녀의 변이다. 그녀는 언젠가 내게 "그때는 내가 김태우를 닮은 어떤 오빠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네 아빠가 눈에나 들어왔겠냐"며 '퇴짜의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길남 씨는 그녀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외할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그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으로 호감을 표시했다. 길남 씨의 사인을 전달받은 외할머니는 그를 몇 번 더 만나보라며 그녀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외할머니는 번듯한 모습에 벌어들이는 수입도 적지 않은 길남 씨가 셋째 딸의 결혼 상대로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긴 그녀는 그를 다시 한번 만났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 그녀는 두 번째 만남에도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댔다. 하지만 이 남자도 보통은 아니다. 어떻게든 인연의 끈을 부여잡은 남자는 세 번째 만남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만남이 8번에 닿았을 무렵, 길남 씨는 미자 씨에게 약혼을 제안했다.
몇 개월간 예정된 출항을 앞둔 그는, 다음에 한국에 들어올 때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제안이 무척이나 갑작스러웠다던 미자 씨는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혼 후 30년 넘게 길남 씨와 살고 있는 미자 씨는 입버릇처럼 "엄마가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자신이 너무 착해서 엄마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고 엉겁결에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게 그녀의 불만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둔 엄마가 될 줄은 상상조차 안 해봤다는 그녀다. 그리고는 자신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를 귀찮게 했던 남자들에 대해 읊는다. 그 남자들이 실존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강조하는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길남 씨보다 훨씬 낫다는 점이다.
길남 씨도 가만히 듣고 있지만은 않는다. 길남 씨는 자신과 오래 교제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됐다는 점을 '굳이' 언급한다. 이에 약이 오른 미자 씨가 "그럼 그 여자하고 결혼 하지 왜 나랑했노"하고 받아치면 다시 길남 씨가 "다 지난 이야기는 해서 뭐할 거고 다른 이야기나 하자"고 말하며 상황이 마무리된다. 한 번의 결혼으로 피해자 두 명이 생기고 그들이 서로의 피해를 호소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하다.
자칭 '결혼 피해자'들의 최근 관심사는 자녀의 결혼 계획이다. 어느덧 서른 살이 된 아들이 아직 결혼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자, 그들은 "만나는 사람은 있냐"며 조심스레 말을 붙인다. "애인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아직 결혼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내가 대답하자, 돌아오는 건 "모든 조건을 다 갖춰 시작할 필요는 없다"는 우려 섞인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그들은 "결혼을 하고 손자를 보여주는 게 부모를 위한 효도"라거나 "하루라도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 축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 "혼자 나이 들면 외롭다"와 같은 결혼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 따위를 늘여놓는다. 이럴 때 두 사람의 모습은 꼭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 '만담 듀오'같다.
나는 그들이 왜 자녀에게 결혼을 권하는지 잘 모른다. 하루가 멀다하고 옥신각신하는 것을 반복하고, 이따금 사느니 못사느니 한바탕 전쟁을 벌이면서도 결혼이 주는 장점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를 아직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30년간 건재하게 결혼생활을 이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결혼이란 원래 싸움의 연속"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용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생 누군가와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결혼을 택하는 일 말이다. 밥 먹듯 사소한 말다툼을 하면서도 계속 함께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 예측할 수 없는 갈등을 감내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일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면 무엇일까.
아직 그런 용기가 나지 않는 걸 보면 난 아직 어른이 덜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갖지 못한 용기로 무장한 두 사람은 크고작은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함께 산책을 나가곤 한다. 또 자식들이 모두 떠난 집에서 음식을 해 먹고 티비를 보며 이야기도 나눈다. 혼자 사는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말처럼 외로움으로 범벅된 삶일까. 그 용기라는 건 나를 찾아오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