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스 Jan 06. 2024

넉살 좋은 미자 씨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1968년생인 미자 씨는 자신의 인생을 '엄마'로만 살아온 여자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아이 셋을 키우는 것에만 전념했던 그녀는 이렇다 할 취미도 갖지 못했다. 아직은 옛정이 남아 있는 동네에서 오가며 친해진 또래 여성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계 모임을 하며 가끔 함께 밥을 먹는 게 그녀의 유일한 흥밋거리다. 결혼을 한 후로는 다른 지역에 정착해 사느라 가족, 고향 친구들과도 떨어졌다.

넉살 좋은 미자 씨는 사람을 좋아한다. 미자 씨가 다녀간 곳에는 항상 언니와 친구, 동생이 생긴다. 처음 간 미용실이나 작은 마트,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별 거부감 없이 그녀의 가족이 되는 것을 허락한다. 친구 사귀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충분히 '기능장'을 보유하고도 남았을 테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은 경이롭다. 첫 번째. 그녀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핀다. 자신과 대화를 할 만한 인물이 있는지 탐색하는 단계다. 다른 일에 몰두하지 않고 공감을 잘해줄 것 같은 또래 여성이 주요 타깃이다. 대화 상대를 발견한 것 같으면 살며시 가까이 접근해 본다.

두 번째. 혼잣말이 아닌 혼잣말을 내뱉는다. "아이고 어디 갔다오는가베" "날씨가 와 이래 춥노"처럼 누군가 이야기를 받아주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말을 던지는 게 포인트다. 자녀, 손자와 함께 있는 어른들은 물고기가 미끼를 물 듯 그녀의 혼잣말에 대답하곤 하는데, 상대방의 호의적인 반응을 확인한 미자 씨는 이를 놓칠새라 몇 마디를 더 덧붙인다. 주로 "아이고 시장 다녀왔나 엄마가 맛있는 거 마이 사주드나" 따위의 말들이다.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말을 붙이지 않는 그녀는 주로 조심히 가라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녀의 말 걸기 능력은 지하철에서 음악을 크게 틀거나, 시끄럽게 통화를 하는 '빌런'이 나타나 공통의 불만이 생기는 경우 더욱 빛을 발한다.


미자 씨의 자녀들은 그녀의 넉살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미자 씨와 함께 외출할 때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미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져 버린 나는 행동거지를 항상 조심해야 했다. 아는 미용실, 아는 마트, 아는 김밥집, 아는 화장품 가게까지 수많은 '아는'에 쌓여 살아가는 기분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살 수 있을 때가 그랬다. 불량식품 사탕부터 색소가 잔뜩 첨가된 아이스크림, 학교 준비물까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가질 수 있었다. 문구점 아주머니도 엄마의 수많은 언니 중 한 명이었기 때문. 그 언니는 어찌나 장사 수완이 좋은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내 외상값을 줄줄 읊어댔다. 다 엄마가 갚아야 할 돈이니 마음대로 물건을 사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 우리 가족은 그때마다 다른 도시에 터전을 마련해야 했다. 부산에서 김해, 울산 등 영남권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매번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느낀 변화는 적지 않았다. 연인과의 헤어짐보다 오랜 친구와 헤어져 상실감을 먼저 느꼈고 새로운 친구와 친해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족의 환경을 원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미자 씨는 묵묵히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넉살 좋은 미자 씨가 느꼈을 아쉬움은 내 것보다도 컸을 것 같다. 사람 좋아하는 미자 씨에게는 정든 사람들이 큰 자산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엄마'로 한평생을 살아온 미자 씨는 자식들 앞에서 불만을 애써 감췄을 테다.


다행히 지금은 같은 동네에서 15년 가까이 살고 있어 미자 씨가 사람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도 별일이 없는 한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계속 살 것 같다. 동네에서 살던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그만큼 새로운 사람도 생기겠지.

지금도 본가에 갈 때마다 나는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곤 한다. 수많은 '아는 사람'이 길거리를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미자 아들'로 살아가는 건 절로 겸손해지는 일이다. 미자 씨는 사람 만나기 말고도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등산도 가고 헬스장을 등록해 운동도 한단다. 30년간 갇혀 있던 '엄마'의 굴레를 벗어던진 미자 씨의 남은 여정을 응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