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청설, 2024 >
꿈 없는 취준생 '용준'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가게를 도우며 아무 회사에 이력서를 집어넣는 게 그가 하는 유일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도시락 배달을 간 곳에서 또래 여성 '여름'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때부터 용준은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맨다. 마침 스쿠터가 고장 난 그녀에게 다가가 스쿠터를 수리해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고, 그녀도 그의 호의가 싫지만은 않다. 서로에게 끌린 두 청춘은 그렇게 서로 가까워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둘 사리의 벽을 체감한다.
영화 '청설'은 말 대신 소리와 카메라 영상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영화다. 그중에서도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먼저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영화 '청설'이라는 제목과 함께 물에서 위를 올려 찍은 듯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앞으로 물을 소재로 다룰 것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밖에도 용준의 뒷모습을 카메라 정중앙에 두고 주변 모습이 변하는 장면,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용준의 뒤편으로 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 등에서 영상미를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을 담담하게 잡아내는 장면이나 계절감을 드러내는 쇼트 등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말할 수 없는 비밀' 등 풍경을 중점적으로 담아낸 대만 영화의 느낌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서사의 치밀함보다 영상미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서사 진행 과정에서 몇몇 허점이 발견되더라도, 이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농인은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잘 보는 사람"이라는 용준의 말처럼, 카메라는 그들의 세상을 더 잘 비추기 위해 노력했다.
배우들의 웃음, 숨소리에 집중한 것도 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소리 언어가 등장하지 않으면 동시녹음 등 현장의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웃음과 숨소리를 매우 선명하게 담는다. 농인인 가을의 당황한 숨소리, 여름의 즐거운 웃음소리 등이 관객에게 자막과 함께 전해진다. 관객들은 그들의 숨소리만으로 감정을 알아챌 수 있다.
영화 후반부, 여름에게 단절 당한 용준은 그녀의 상황에 적응해보기 위해 귀마개를 끼고 길가를 걷는다. 비슷한 맥락으로 여름은 용준과 자신의 동생의 환경을 경험해보기 위해 수영장 물 속으로 뛰어든다. 물에 빠진 여름의 귓 소리가 화면을 넘어 길가를 걷는 용준에게 영향을 미친다. 소리로 두 사람 사이에 공감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섬세한 연출 포인트다. 서로를 농인으로 착각하고 클럽에 함께 간 용준과 여름이, 스피커에 손을 대고 '음악을 만지는' 장면도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멀쩡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멀쩡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받는 인물이다. 농인인 가을이 신체적으로 멀쩡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용준과 여름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이유로 결핍을 느끼는 삶을 산다. 하지만 영화는 멀쩡하지 않아도 삶은 푸르다고 역설한다. 멀쩡하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이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그 삶은 의미 있다는 게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다. 영화 제목인 '청설'도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다.
영화를 축약하는 단어는 '얼굴 이름'이다. 수어에서의 이름을 의미하는 얼굴 이름은 기존의 이름과 배경 등을 모두 지운 채 만들어진다. 여름에게 미소를 뜻하는 얼굴 이름이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신체적 특징을 통해 축약되는 게 수어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과 가을의 부모님 이야기, 용준이 왜 수어를 처음 배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밀려난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 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개인 사정을 뒤로 미룰수록 관객은 그들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영화 '청설'이 관객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순수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용준과 여름은 나이는 26살로, 그들의 나이에서 가장 치열하게 쟁취할 수 있는 건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오늘날 취준생들은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순수한 사랑도 특권으로 여겨지는 오늘날, '청설'은 청년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다. 여기에서 배우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용준 역을 맡은 홍경과 여름 역을 맡은 노윤서, 가을 역의 김민주 배우는 영화를 완성한다. 완성도 높은 각본에 그들의 싱그러운 미소가 더해져 관객의 마음을 잡아끈다. '완벽하지 않아도, 애써 레인에 서지 않아도 삶은 언제나 푸르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