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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un 04. 2019

아들아 정답은 없단다.

스미스의 두 번째 생각


똑똑.. 들어가겠습니다. 조금씩 힘을 주자 묵직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쪽에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4명의 중년 남녀가 서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서류를 보던 이들은

마치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다섯 명의 청년들이 중년을 향해 일제히 인사했다. 청년 중 몇몇은 당당한 표정을 지었고 또 다른 몇몇은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리에 앉으셔서 앞에 적힌 질문지를 하나씩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호명한 분부터 차례로 질문에 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들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질문지를 뽑았다. 행여 질문지가 사라질까 두 손으로 종이를 꽉 쥐는 지원자도 있었다.


네 그럼 먼저 김ㅇㅇ씨 말씀해보시죠

답변은 한 명씩 진행되었다. 한 명 한 명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중년 남녀는 숨소리마저 평가하겠다는 표정으로 답변자를 주시했다. 겉으로는 자신 있는 듯 대답하는 청년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중년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렇게 3명의 지원자가 답변을 마치고, 왼쪽에서 네 번째 앉아있던 지원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질문지에 적혀있던 문제를 막힘 없이 답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준비해왔던 이야기도 술술 풀어냈다. 이따금씩 어두운 표정을 짓던 중년 남녀도 흥미로운 듯 관심을 보이며 다른 지원자에게 하지 않던 질문들도 쏟아냈다. ‘4번’은 여유롭게 질문들을 소화하며 면접관들과 대화를 이어가기까지 했다.


‘4번’의 차례가 끝나고 관심은 5번으로 쏠렸으나, 그는 웬일인지 대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한마디를 이어갔고 중년 남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면접을 종료했다.


그렇게 청년들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무거운 문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회사에서는 인심 쓰듯 면접자들에게 ‘2만 원’이 든 봉투를 나눠주었고 5번은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의 어깨는 잔뜩 움츠러져 있었고, 지방으로 내려가기 위해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의 표정은 어린 시절 키우던 토끼를 잃은 것처럼 어두웠다.


5번은 지하철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그의 엄마인듯했다.

통화를 하는 그의 어깨가 이따금씩 들썩거리는 것을 보니 울음을 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남짓한 면접을 위해 3일 동안 서울에서 숙박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2분이라는 시간이 원통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면접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통화를 하는 그의 오른손에는 2만 원이 든 봉투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들아 고생했다”

그의 어머니의 말은 간결하고 힘이 있었다.

마치 바로 옆에서 토닥이며 말하는 듯했다.


“아들아 세상에 정답은 없단다. 그 사람이 너와 달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답인 건 아니다. 단지 너와 답이 달랐던 것뿐이지”

“너는 그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너의 답을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 되는 거란다”


어머니가 아들을 다독이는 동안 아들의 눈에서는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는 듯 어머니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오늘 너에게는 답을 좀 더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됐겠구나. 대견하게 생각한다. 몸 조심히 내려와서 보자꾸나”


아들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어머니께 대답했다. “네 엄마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전화하기 전까지는 이 경험을 까맣게 잊어버려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요. 오늘 기억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서 제 답을 다듬는 데 사용할 거예요”


그렇게 아들은 어머니와 통화를 마쳤다. 축 처진 어깨는 여전했지만, 더 이상 그에게서 어두운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단해진 그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자 지하철이 기차역에 도착했다. 5번 청년은 양 손 무겁게 짐을 들고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왼쪽에는 갈아입을 정장이, 오른쪽에는 노트북 가방이 들려있었고, 등에도 큰 백팩이 매져 있었다. 그의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면접장 문과 달리 지하철의 문은 누군가 힘을 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열렸다. 문 바깥쪽에는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 남녀도 없었다. 그는 자신 있게 열린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잠시 후 문이 닫히자 그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나는 그의 존재가 더 단단해졌을 거라고 믿는다.

중년 남녀가 그를 선택했든, 선택하지 않았든

그는 이미 시험을 통과했으니까 말이다.


또 그는 앞으로 답을 잘 만들어나갈 거다.

그에게는 정답에 가까운 어머니와,

삶의 태도가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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