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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un 22. 2019

부치지 못한 편지

엄마, 저예요 작은 아들. 

엄마가 항상 '똑똑하다'라고 

주변에 자랑하는 둘째 아들이요.


'그렇지 않다'며 머쓱해하던 

저를 뒤로 하고 

엄마는 항상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죠.


한 편으로는 이런 바보 같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시는 엄마가 감사했고

진짜 똑똑한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엄마. 저는 오늘 실패를 경험했어요.

아니, 제가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니까 

굳이 따지자면 실패가 저를 찾아왔어요.


제 생각보다 실패는 무겁더라고요.

가볍게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라는 놈이 참 간사한 것 같아요. 


실패를 깨닫기 전까지 이 놈은

제 기분을 좋게 해 주다가, 막상 실패가 

현실로 다가오자 태도를 

180도 바꾸더라고요.

이 기대란 놈이 제 실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어요.


사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어요.

항상 부지런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효율성을 추구하며 살아왔어요.


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비관적으로 살아가기보다,

순응하면서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찾으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도, 안 되는 건 안되더라고요.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고, 

좋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더라고요.

그들 앞에서 전 한 없이 

작아지기만 했어요.


환경 탓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오늘 

그들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들보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일 

자신도 있어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엄마, 사실 오늘은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어요. 

가족이라는 그늘이 

필요한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저에게 붙어있는 부정적인 기운을

집으로 옮기는 게 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기도 힘든 엄마에게,

제 걱정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빈 집에 혼자 남아 

좌절이라는 놈을 떼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혹시나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씩씩했잖아요. 

하루 또 이틀, 머릿속을 비워 내다 보면

어느샌가 또 긍정적인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거예요.


엄마, 오늘 읽은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어요. 

이 구절을 스스로에게 선물할까 해요.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가끔씩은 저도 길을 잃어도 되겠죠?

저라고 항상 옳은 길만 갈 순 없잖아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실패에 좌절하는 사람도 

엄마의 아들이 맞는 거겠죠?


엄마, 이렇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마무리할까 해요.

엄마에게 이 편지가 전해진다면 

분명히 엄마의 마음이 아플 테니까,

곱게 접어서 저 혼자 간직하는 걸로 할게요.


항상 못난 아들 응원해줘서 감사해요.

더 똑똑한 아들이 될게요.


2019.06.22 

실패에 마음껏 좌절 중인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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