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의 세 번째 생각
빌리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진짜네. 다행히도 오늘은 뭉게구름이네”
빌리 옆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쳐다보던 내가 대답했다.
빌리는 마치 흘러가는 구름을 손에 움켜쥐겠다는 듯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형아 그럼 오늘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뜻이네?”
빌리는 기쁜 얼굴로 내게 물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나는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을 보며
구름이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거라고 빌리에게 설명한 적 있다.
조각구름은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많으면 나타나고,
뭉게구름은 마음이 행복한 사람들이 많으면 나타난다는 말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이 사실이 어느 정도 맞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원래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느끼는 창피함이 더욱 큰 것 같았다.
1교시 수업이 끝난 뒤, 어김없이 불리던 내 이름.
“지금 행정실로 내려오세요.”
지지직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내 이름이 불릴 때면, 스스로가 너무 작아졌다.
그렇게 찾아간 행정실에는 항상 보는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 달 급식비가 아직 안 들어왔네. 부모님한테 꼭 말씀드려”
매달 겪는 똑같은 말, 똑같은 상황이었다.
교실로 돌아가면 친구들은 행정실에 다녀온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항상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느꼈던 아픔과 부끄러움.
이런 날 하늘에는 꼭 조각구름이 떴다.
어느덧 나는 성인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창피함을 느꼈던
학교와 친구들은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이후에도 나는 매일 집에서 구름을 쳐다봤다.
가끔 조각구름이 뜰 때도 있었지만, 뭉게구름이 더 많았다.
옆집에 사는 빌리를 알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빌리는 하늘을 보면서 누워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이 아이는 올해 11살이라고 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빌리는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학교에 가도 친구들이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되지’라고 말하려고 하던 찰나,
나는 ‘급식비를 잘 내면 되지’ 라고 충고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빌리의 삶과 내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 다음날부터 매일 빌리와 나는 함께였다. 하루 일과를 마칠 무렵,
빌리와 나는 옥상에 누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구름을 관찰했다.
빌리는 하늘에서 뭉게구름을 발견하면 마치 값비싼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