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 버드 스트라이크 > 리뷰
요즘 이 주제에 관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영화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에세이나, 소설로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지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기생충'이다.
이런 콘텐츠들의 많이 나오고,
또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타인과의 공존을 중요시하고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어렵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라서, 그 누군가가 명쾌하게
해답을 내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각자 나름의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유명한
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 역시
타인과의 공존을 주제로 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루'와 '비오'가 그리는
이야기를 통해 공존의 방법을
조금은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익인'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다.
익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새처럼 날개가 달린 존재를 의미하는데,
작가는 날개가 없는 사람들을 '벽안인'
날개가 있는 사람들을 '익인'이라고
구분 짓는다.
소설 속 주인공인 루와 비오는
모두 이방인이다.
주인공인 루는 '시장'격인 시행과
그 비서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흔히 '서자'라고 불리는
신분을 지니고 살아간다.
절대적으로 신분이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칫밥을 먹으며 사는
처지라는 의미다.
반면 비오는 익인들 사이에서
이방인이다.
비오는 익인과 벽안인의 사랑을 통해
탄생한 존재인데, 순혈 익인들은
혼인을 못하게 하는 등
그에게 엄격한 제한을 내린다.
종족을 보호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루와 비오로 대표되는 두 이방인은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알아간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플롯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흔히 '아바타'나 '포카혼타스'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구조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지의 세계를 개발하고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미지의 세계(자연의 세계)에
침입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 구조를 그렸다.
이 소설에서는 익인의 신체를
무기로 이용하고자 하는 한 벽안인이
익인을 납치해 실험을 하고,
이에 저항하는 익인과 '루'라는 벽안인이
이를 해결한다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간중간 포함된 심리묘사나
상황 묘사 등은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이 주는 교훈은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는 비행사가 된다.
루를 좋아하고 아끼는 한 할아버지는
비행을 앞두고 있는 루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자네가 더 잘 알겠네만,
새와 부딪치면 새만 부서지거나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웬만큼 침착한 조종사라도
계기 파손 정도의 따라서는
추락을 면하기 어려울 걸세.
결국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공존'이라는 가치는 한쪽 편의
일방적인 호의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상호 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새가 비행기에 부딪히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면
결국 비행기를 조종하는 인간과,
비행기 역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공존이라는 가치는
서로가 필요성을 느낄 때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쪽 편의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이해당사자 서로의 양(兩)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소설 속에서 공존의 메타포인 루와 비오는
잦은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루는 비오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체험함으로써
익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의 편에 설 수 있게 된다.
우리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체험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이론적으로 그들을 이해하자는
담론만 가지고는 타인과의 공존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결국 나와 다른 사람들과
실질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조성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소설은 결국 '루'라는 캐릭터가
익인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작가는 익인을 잡아다 실험을 한
'마이'라는 캐릭터를
응징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공존방식을 추구했다.
결말이 독자들에게 비칠
모습을 특별히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결말에서의 디테일과는 다르게
소설 속 장면 장면에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
먼저 내용의 비중이다.
소설은 초중반부까지 인물과 상황 묘사에
집중한다.
작품 속에서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다양한 배경들이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초반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된다.
인물의 이름들이 생소할뿐더러,
장면의 전환이 잦기 때문이다.
반면 소설의 핵심적인 내용 전개에서는
서술이 빠르다는 느낌을 준다.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로 이어지는 과정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 안에 새로운 갈등 구조나,
다른 사건들을 넣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는 캐릭터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내용의 비중이
초중반 이야기의 발단 부분에 치우쳐있다.
익인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집어넣고
거대한 세계관을 그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점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에 따라 캐릭터의 비중이나
성격이 한계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비호의 쌍둥이 여동생인
지요라는 캐릭터와 유안 회장은
작품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또한 '탄'이라는 캐릭터와 '아마라'라는
여성 캐릭터는 그동안 문학계에서
흔히 사용되어 왔던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대로 반영한 캐릭터 같았다.
물론 여자아이인 루가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여성상을
따라갔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탄과 아마라를 생각하면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비중 있고 능동적인 여성상이
그려졌다면, 이야기 전개가 더 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특히 요즘처럼
'공존'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공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체험하고, 질문하라고 말한다.
루가 익인의 세계에 직접 가서
그들의 삶을 느꼈던 것처럼,
체험이 강화될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 작가는 질문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작품 속 포용의 상징으로 드러나는
익인 집단에서도 비오를 향한
차별은 존재했다.
그러나 루는 이러한 차별은 부당하다고
익인의 지도자에게 항의한다.
이로 인해 비오를 향한 차별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지도자는 '자신에게 그런 지적을 해줘서
고맙다'라며 루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런 장면은 결국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차별인지를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고, 이 차별을 해소할
방안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에 대한
공론화가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상황 묘사가
디테일하고, 문장에 힘이 있다.
공존과 다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