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생각하기

토니 포터 < 맨박스 > 리뷰

by 스미스

"야! 너 여자애들이랑만 놀다가

나중에 친구 없어진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

한 남자 선배가 했던 말이다.


그 선배는 내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남자애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고,

여자인 친구들하고만

가깝게 지내기 때문이란다.


나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친구랑 노는데,

친구가 없어진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약 6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 선배는 여자를 친구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는 의외로 주변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맨 박스'의 사례다.

나도 맨 박스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선배의 말에 묻어있는 생각의

근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맨박스.jpg

오늘 내가 접한 책은

'맨 박스'라는 책이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은 남자들을 겨냥한다.


남성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맨 박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독자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맨 박스가 있어! 너는 지금 맨 박스에

갇혀있어! 이를 벗어나야 해!'

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이게 '맨 박스의 일종이야.

너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니?

이걸 벗어나는 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야'라고 타이른다.


결과적으로는 저자의 방식이

효과가 더 좋다.


전자의 말하기 방식에서는

대부분 강한 반발을 초래했지만

후자의 말하기 방식에서는 저자의 말에

수긍하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맨 박스는 무엇이고,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갇혀있는 것일까.


맨 박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이 종종 발생한다.

빈도수는 꽤 잦다.


얼마 전에도 베트남 이주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한국 남성이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나온 적 있다.


이런 사건들을 마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를 느낀다.

'저런 나쁜 놈을 엄하게

처벌해야 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듯 뾰족하던 분노의 끝은

곧 무뎌지고, 힘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저자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들은

이런 모습의 우리다.

착한 심성을 지닌 대부분의 남성이

이 책의 주요 독자란 이야기다.


그들은 가정폭력, 성폭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분노를 느끼지만,

그들의 분노는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표출'하는데서

그치기 일쑤다.


물론 이에 관해서 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러한 원인이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여기는 맨 박스에 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착한 남성들은 성장과정에서

일련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맨 박스에 갇히게 된 남성들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이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풀어놓고 설명하면

일부 남성들은 반발심이 생긴다.


'그 나쁜 놈 때문에 왜 남성 모두가

욕을 먹는 거야'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데로

우리는 기존의 '남성성'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그저 여러 세대를 거쳐 만들어진

남성성을 받아들여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서

'만들어진 남성성'에 대해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눈물


만들어진 남성성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소재가 바로 눈물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눈물이 참 많았다.


밥을 먹다가 엄마가 던진 한마디에

서운함이 북받쳐 올라와

밥을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울다가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유독

눈물에 예민했다.


반면 우리 아버지는 눈물을

엄청나게 싫어하셨다.

항상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는

상황이면 나는 눈물을 흘렸는데

아버지는 5초를 세시며

뚝 그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가 어찌

흘러내리는 눈물을

5초 안에 그칠 수 있었겠는가.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뭘 잘해서 우냐'며

더욱 화를 내셨다.


이런 영향 탓인지 나는

고등학생이 되자 눈물이 없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이후로는

눈물을 흘린 경험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눈물샘이

말라버려서(실제로도 눈물샘이

매우 열악하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이 아버지의

'눈물 야단'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고

본다. 운다는 건 상황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일 거다.


이런 게 전형적인 맨 박스의 일종이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고다.


지금 생각해보면 울지 않아도

어떤 상황은 통제되지 않았고, 울어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원인이 된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눈물을 흘려도 되고,

이는 다시 여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지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로 이어진다.


"남성성에 대한 믿음은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시키기도 한다.

여성은 자주 울고
감정 표현이 과다하므로
남성보다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친구


이 외에도 앞서 언급한 선배의 사고방식

역시 전형적인 맨 박스다.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회화 과정 때문에 발생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자연스레 구분 짓는다.

유아기 때는 그렇지 않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는 더욱

이러한 관습이 확고해진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를

이성애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남녀로 구분 지어진 학교를 나온

학생들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좀 더 심화된다.


쉬는 시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이유만으로 '사귀냐'며

그들을 놀리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물론 정말 그들이 사랑하는 관계

였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놀리며

소위 '엮으려'는 행위를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이성애

중심주의적 시각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로 이어진다는 거다.


은연중에 여성은 이성애 중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고,

다수의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는 남자를 보면

그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한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었던

선배의 사고 역시 여기서 기인한다.

선배는 나의 이성친구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남자인 친구들만 '진짜 친구'로 여겼다.


결국 나의 이성친구들은

다른 남성과 짝을 이루어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진짜 친구인 남성과

친하게 지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마찬가지로 대학교에서도

남초 집단인 일부 학생들과

여초 집단인 학생들의 행동 양식을

비교해보면


남초 집단인 학생들 사이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관행이

더욱 빈번하게 드러난다.


이건 단순히 여성을

많이 만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고 자체가

남성주의적이기 때문일 거다.


생각


지금까지 내가 써놓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낄만한

사람들이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맨 박스는 남성들이

자신의 감정의 가드를

한껏 올리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가드를 내려놓고 감정에 충실하면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결국 만들어진 남성성의 측면에서는

패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의 사례 이외에도 책에서는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사례들은 남자인 저자가

실제 성인 남성들을

상담하며 겪은 이야기 들이다.


내가 써놓은 극단적인 사례보다,

훨씬 부드럽고 좀 더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을 듯하다.


저자는 맨 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남성에게도 결국 좋은 일임을

알게 된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가장을 자처하며

가정을 부양하지 않아도 되고,

소소한 삶을 살면서

마음대로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이에 대한 방법으로

의심하기를 강조한다.

남성들이 '맨 박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는 말이다.


평소 아무런 의심 없이 쓰던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 말이 좀 이상하네'.

'이 단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면 맨 박스를

벗어나는 과정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퀴어축제에서 다녀왔는데,

퀴어축제에서는 화장실 앞에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문패가

붙어있었다.


l_2019060101000061800001521.jpg 출처 경향신문 포토뉴스

'남녀공용화장실'은 들어봤지만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성중립 화장실이란

LGBT(레즈비언·게이·

양성애자·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남녀 모두가 사용 가능한

공공화장실을 뜻한다.


그동안 흔히 사용했던

남녀 공용이라는 의미 또한

남자와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시각이 담겨있었다는

이야기가 됐다.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아니라

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에게는 만들어진

남성상을 강요하는 '맨 박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만들어진 남성상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불편함을 느끼며

이 책을 읽어보자.

변화는 불편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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