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에스피노사 < 푸른 세계 > 리뷰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때때로 비극적이다.
그 죽음의 대상이 어린아이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뉴스나 일상 속에서도 어른들의 죽음보다는
어린아이의 죽음이 더 슬프게 다뤄진다.
이유가 뭘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은 하나이고
그 고귀함에 대해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그 차이가 '기회'에서
비롯된다고 대답한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다양한 삶을
누릴 기회가 적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푸른 세계>에서는
어린아이의 죽음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 아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남겨진 기회'를
소중히 여기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알베르트 에스피노사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 그 후
10년간 항암치료를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쪽 다리를 잃고,
폐와 간의 일부 기능이 상실되기도 하면서
그의 삶은 어두운 부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푸른 세계>에는
어딘지 모르게 염세적이고,
음울한 분위기가 묻어 있다.
작가의 생각은 소설 초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장면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삶의 궤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우리에게 '삶의 가치'에 대한 교훈을 준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여기던 한 소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다.
책의 내용을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다.
비관적인 삶을 살던 주인공은
자신의 혼돈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자신의 혼돈을 사랑하게 되면,
인생의 불확실함조차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작가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자신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병원 룸메이트로부터 들은
'그랜드 호텔'에 찾아가기로 한다.
이 호텔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주는
장소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간 그랜드 호텔은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장소였다.
주어진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현실 세계에서의 온갖 규칙과,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행하는 것.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만,
쉽게 실천하긴 어려운 그 방법 말이다.
모든 것의 기본은,
오늘이 죽을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전부다. 이튿날 잠에서 깨면
24시간이 더 주어졌다는 걸
깨닫고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소년은 결국 그랜드 호텔에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사용하는 장면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 후 그는 '노래하기'처럼 거창하지 않고
사소한 것들을 행하며 살아가기로 한다.
짧은 인생의 마지막에서 어린 소년은
거룩하고 위대한 일을 하기보다
춤을 추는 행위처럼 단순한 행동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죽음에 무감각하다.
평소 내가 죽는 모습을 생각해보지 않는 것은 물론,
타인이 죽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의외로 담담할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죽음에 대해
무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도 많다.
매일매일 죽지 않을 방법을 떠올리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죽음에 대해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일은
남아 있는 나의 삶을 더 고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얘기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 한 번 죽음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은 소년의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소 추상적으로 여겨질 만한 문장이 많다.
이 문장들은 때때로 현학적이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책 곳곳에 숨어 있는
좋은 문장들이 많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문장들은 곱씹을수록 더욱 깊이 와 닿았다.
몇 가지 좋았던 구절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피타고라스는 행성들이 돌면서
우주의 음악 소리를 낸다고 말했어.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우리가 그 하모니에 익숙해진 채
태어나고 성장했기 때문이지.
소리를 느끼려면 침묵이 필요해.
우리는 어리석은 일에 두뇌를
너무 많이 써서 결국 터무니없는
문제 해결에 매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때
당신의 본질과 진정한 당신이 등장한다.
우리는 흔히 침묵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침묵이 있어야만
소리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삶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세상은 항상 네가 너의 혼돈을 바꾸고
그것을 지배하고 수정하고
명령하거나 축소하기를 원해.
실제로 너는 그것을 사랑해야 하고,
그뿐 아니라 사랑한 다음에
그것을 확장시켜야 해.
각자의 삶이 자신의 혼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