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주전장 , 2019 >
대표적인 예가 위안부 합의다.
피해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로
역사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던
박근혜 정부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들은
다시 한번 상처 입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어설프게 만들고자 했던
해피엔딩이 되려 화를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한다.
지나간 역사를 가지고 적당히 하라고,
너무 감정적인 것 아니냐고.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의 대응이
감정적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대응이
'비정상적으로' 이성적인 경우가 많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냥 참고 살아가라는
교육을 받아온 탓이다.
그러는 사이 진실은 점차 사라지고,
결국 '이성적인 척'하는 이들이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반면 패배한 이들은 감정을 거세당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영화 주전장은 위안부에 관한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을 담은 영화다.
영화는 극우의 주장을 보여주고,
이를 반박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관광 중단 등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지금,
한 일본계 미국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흔히 우리가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역사'고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
역사는 배우고 논쟁하고,
때로는 수정하는 것이지만
기억은 우리의 내면에 새겨진
논쟁할 수 없는 인식의 측면이다.
우리에게 위안부 문제란
역사보다는 기억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 우익들은 역사를 강요한다.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이 일정 부분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면 서다.
80~90세의 할머니가 어린 시절
겪은 참혹한 광경을 완벽히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지적은 할머니들의 '기억'을
무시하고 역사를 강요하는
일종의 전술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강자가 가진 '폭력'의 일환이다.
이에 따라 할머니들은 실제로
증언을 하게 되는 자리가 있으면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한다.
정확성에 얽매여 당신의 증언이
꼬투리 잡힐까 봐서다.
일본 우익의 행태가 할머니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주전장의 감독 미키 데자키는
역사의 권력을 가진 우익들의 횡포에
맞서 그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역사적 자료와 전문가들을 인용하는
그의 논증은 꽤 탄탄하다.
영화 속 일본 우익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들의 신념이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신념이 옳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란 이야기다.
일본이 우익들은 우리나라의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
항상 중국을 언급한다.
소녀상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외까지 설치되는 데에는
중국의 자금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들은 이러한 소녀상 건립이
한미일 안보동맹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중국의 심산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이해하는 방식
역시 전근대적이다.
자민당의 한 정치인은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을
기술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와 같은 프로파간다를 통해
일본을 헐뜯는다고 이야기했다.
우익의 핵심적인 인사인
'일본회의 '관계자는
"중국이 붕괴하면 한국이 일본과
다시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 눈에는 우리가 중국과 같은 해외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익들의 모습을 보며
다소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이러한 신념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거다.
그들은 역사 권력이 가진 힘을 이용해서
'난징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직접 진실임을 입증하라는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근거를 대면 근거의 신뢰성 자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잘못된 신념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다.
영화는 반복해서 위안부 문제가
일본 우익들에 의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보여준다.
우익의 주장과 그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들을 대조하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신뢰성을 높였다.
다만 인터뷰 위주의 내용이 많다 보니
내용 전개 자체가 지루하고,
늘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역할도 수행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긴다.
왜곡된 신념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다.
감독은 완벽한 역사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일본 우익들이 현재 우경화를
계속 추진 중인 이유 중에는
과거 자신들의 군국주의 국가가
완벽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완벽한 국가에서 위안부와 같은 오점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에
이를 지워버리고, 다시 전쟁을
마음껏 수행할 수 있는 국가로
돌아가자는 게 그들의 속마음이다.
그러나 감독은 완벽한
역사는 없다고 강조한다.
역사가 완벽하기보다는
역사를 인식하는 방식이
점차 완벽해질 뿐임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학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우리 모두는
무심히 지나친 과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게 진정으로
사죄하는 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불매운동이 한일 간의
새로운 갈등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비정상적인 이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매운동을
지속하는 거다.
이는 일본에게 우리의 분노를
표출하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본다.
반면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유지하는 거다. 여기서의 이성은
우리나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투를 수행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예를 들어 무턱대고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 가게를 운영하는
우리나라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불매운동을 추진한다던가,
후손들에게 바람직한 역사인식을
남겨줄 수 있도록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 등이다.
이성을 유지하고 감정을 적절히
드러낸다면 일본의 우익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거다.
영화에서는 일본 우익들의 망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고 김학순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과거에는 역사의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국 전역에서는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한 인권 단체들이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인종도 언어도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내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국내에서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올바른 신념을
드러내는 것에 더욱 가치를 둔다.
미국에서, 일본에서, UN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리라고 본다.
자크 라캉은 어설픈 해피엔딩이 주는
'안정화'를 경계했다.
그는 안정화를 ‘살균된 슬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설픈 해피엔딩이 주는 안정화는
사람들을 변화로
이끌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영화는 어설픈 해피엔딩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조명함으로써
이 비극을 극복해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없다.
생존해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이성에서 벗어나
지금은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