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미드나잇 인 파리, 2011 >
드디어 봤다. 그렇게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작품성 좋은 영화라 평가받는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를 볼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마음을 먹고 제대로 감상했다.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시 맥주가 따라와야 한다.
영상미를 빼놓고서는 이 영화를 말할 수 없다.
영화 속 장면 장면이 한 편의 그림과 같다.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특성도 있겠지만,
파리 안에서도 아름다움이 빼어난 장소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첫 장면부터 압권이다.
영화의 초반 도입부는 아무런 멘트도 없고,
큰 등장인물도 등장하지 않고
도시의 전경을 비춘다.
그저 도시의 풍경이 주는 그림과
잔잔한 배경음악이 주는 편안함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바쁘게 눈이 따라가지 않아도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대조된다.
여자 주인공인 '이네즈의 파리'와
남자 주인공 '길의 파리'다.
같은 도시에 대해 느끼는 태도가
이렇게 상반될 수 있나 싶다.
전자의 경우 파리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삭막한 공간이다.
자동차가 제대로 다니기도 힘든 장소기 때문에
이네즈가 도시를 대하는 태도 역시 수동적이다.
반면 길의 파리는 이와 다르다.
그에게 파리는 새로운 창작의 공간이자,
일상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장소다.
단조롭고 로망이 없는 미국 생활에서 벗어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이 따라다니는 곳마다 TMI를 설파하는
'현학파' 폴을 싫어하는 이유다.
하나의 도시를 향한 두 가지의 시선이
이 영화에서 중심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시각차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황금시대다.
황금시대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니
황금기라고 표현하자.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이 황금기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로 발생한다.
과거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길'의 황금기라고 여겼던 이네즈는
길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현학적인 폴 역시 길의 소설 주인공을 두고
황금시대의 오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길은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우연히 방문한 1920년대의 파리에
호감을 갖는다.
그곳에서 길은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또한 이후에 이야기할
'아드리아나'를 만나는 곳 역시
1920년대의 파리다.
그곳은 길에게 최고의 장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길은
황금시대의 오류를 깨닫게 된다.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아드리아나로부터다.
우연히 길은 아드리아나와 함께
1900년대의 파리에 방문하게 된다.
과거의 과거, 인셉션으로 보면 꿈속의 꿈이다.
아드리아나는 1900년대 파리에 사는 사람들을
매우 좋아한다.
마치 길이 1920년대의 파리지앵을 보고
감명을 받은 것처럼, 아드리아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한다.
지금 있는 현실보다,
과거를 동경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드리아나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1900년대에 있는 예술가들이 르네상스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을 본 길은
아드리아나와 작별을 고한다.
안타깝게도 황금시대의 오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씁쓸한 메시지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첫 번째는 황금시대의 오류를 인정하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두 번째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온전히 자신을 생각하는 것.
첫 번째는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길이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현재로 돌아오자마자
아드리아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때 그의 표정은 과거 가구를 고를 때 짓던
우울한 표정이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치는 표정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길과 아드리아나가 나누던
대화의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현재가 그래요.
모든 게 너무 빨리 움직이고
삶은 소란스럽고 복잡하죠.
자신이 아드리아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길은 그녀와 키스를 나눈 뒤
'인생은 너무 알 수가 없어서요'라는 말을 건넨다.
이에 대해 아드리아나는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대사로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과거를 좇기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영화가 남긴 첫 번째 메시지다.
두 번째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랑 형태가 있다.
길과 아네즈처럼
일반적인 연인 관계도 있겠지만
잠시나마 길이 아드리아나와 꿈꿔왔던
폴리아모리적인 관계도 존재한다.
길은 아드리아나에 대한 호감을 느끼며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해도 되는가에 대한
윤리적인 갈등에 휩싸인다.
그러나 1920년대에서 만난 예술가들이
한 명의 뮤즈를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었고, 그들은 이 문제에 크게
개의치 않아 보인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행복이
모두 직선이라고만 생각했던 길의
생각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포인트다.
내 주변에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현실에서 벗어나
영화 속 파리로 뛰어들고 싶어 한다.
대체적으로 예술가 기질이 있는 친구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는
그들의 생각과 사뭇 다르다.
낭만은 낭만에서 그쳐야 하고,
현재를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에 앞서 누구나 황금시대의 오류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네즈 역시 이로인해 과거 사랑했던 폴과
바람을 피웠다.
현재를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수록
좀 더 쉽다.
어차피 나를 제외하고,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아드리아나를 그렸던 그림이
훗날 미래에서 다른 여인을 그렸던 것처럼
평가받듯이 말이다.
이 영화를 우리 사회에 적용해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황금시대의 오류를 지닌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띈다.
군사정부 시절의 '개발'을
흠모하는 태극기 집회나
민주화 운동 당시의 기억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386세대가 대표적인 예시다.
이로 인해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며
현재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민들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제는 과거에서 헤어 나오자.
길과 아드리아나가 작별 인사를 나눴던 것처럼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현재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하자.
많은 돈과 사랑, 결혼으로 이어지는
직선적 행복론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도 추구해보자.
우리에게도 '콜 포터의 음악'처럼
새로운 취향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P.S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인셉션'에서도
인상적으로 봤던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이 작품에서도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유분방한 아드리아나를 연기함에 있어서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해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매력적인 외모는 크게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