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물의 기억, 2019 >
솔직히 놀랐다.
지역 언론사에서 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준을 어느 정도 예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의 기억’은 이런 나에게
큰 자극을 줬다.
수준 높은 영상과 잔잔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 다큐멘터리는 매우 인상 깊었다.
물의 기억이라는 제목답게
영화의 중심 소재는 물이다.
이 작품은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물이 흐르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만
영화는 전혀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
영화 속 노무현은 자연을 사랑하는
한 명의 시민에 가깝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
- <물의 기억> 중 故 노무현 대통령
영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었던
자연 친화적인 봉하 마을을 보여준다.
풀밭에서 곤충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새들도 어디에선가 날아온다.
‘자연’이라고 하는 단어를
카메라로 찍는다면 이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물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다.
물에 따라 생명이 유지되고,
또 사라지기 때문이다.
진재운 감독이 영화 내내
물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이유다.
단순하게 물을 가둬놓는 것만으로
그 속에서 많은 생명이 탄생한다.
거미, 잠자리, 사마귀, 개구리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물들이
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때때로 사악하다.
인간들은 작은 생명으로부터
물을 빼앗으려 한다.
대표적인 것이 농약이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듯
농약은 많은 생명을 파괴한다.
인간들은 단지 벼라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 마음대로 물을 오염시킨다.
개구리, 거미와 같은 작은 개체들은
단지 몸집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화학약품이 가득 담긴 독약에 노출된다.
물이 공공의 자원이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재난이다.
그렇게 인간에 의해 희생된 동식물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물을 되찾는다.
단순하게 ‘자연의 섭리’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꺼림직한 측면이 있다.
영화에서는 물이라는 소재로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간다.
봉하 마을의 논에서 물로 인해 발생하는
생로병사의 이야기가 영화의 전체 내용이다.
나는 물이라는 소재를
다른 의미로도 해석해봤다.
감독의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영화 해석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물을 연관 짓는다면
물은 ‘정치의식’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치의식(물)이 있어야 좋은 정치(생명)가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영화 속에서 가뭄이 찾아오는데,
이때 벼는 물을 끌어당기기 위해
더 깊게 뿌리내린다.
정치적 무관심이나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이
결집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때 벼는 우리 모두가 된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시민적 정치의식은 흐르고 흘러
벼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노 대통령의
묘비를 찾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을 그리워하는 어린 식물들의 마음이 아닐까.
이 영화에서 영상미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빼어난 영상미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카메라 기법이 사용됐다.
드론 촬영은 기본이고, 초소형 카메라, CG까지,
내로라하는 촬영기법들이 적용돼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내가 가장 놀랐던 점도
이 영상미였다.
전혀 위화감이 없었고, 모든 장면이
세련되게 연출됐다.
해외 다큐멘터리와 비교해 봐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좋길래 이렇게 칭찬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꼭 한 번 감상하길 바란다.
진재운 감독의 감각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영화에서의 내러티브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크게 스토리 라인이 존재하지 않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영화가 진행된다.
아이 역할을 맡은 소년도 등장하지만
전개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나는 영상미 속에서 약간의 스토리가
더해졌으면 완벽한 영화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히트를 친 ‘칠곡 가시나들’의 경우
영상미가 아름답다기보다는
그 속에 이야기들이 큰 역할을 했다.
좋은 영상에 약간의 휴머니즘이 더해지면
훨씬 호소력 짙은 작품이 될 거라고 믿는다.
참고로 진재운 감독은 KNN 기자 출신이라고 하신다.
기자로서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니 매우 존경스럽다.
나 역시 이러한 길을 밟고 싶은 마음도 크다.
‘우리는 물이며 서로 얽혀있는 생명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대사다.
이 말이 영화를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우리는 물이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이 물을 훼손하면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본다.
정의롭고 담담하게
우리 모두를 지키는 데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