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 선량한 차별주의자 > 리뷰
'차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드는 생각이다.
우리는 대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차별을 실천하는 중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곰곰이 한 번 나의 일주일을 떠올려보자.
내뱉지는 않았더라도 마음으로 누군가를
무시하고 차별한 적이 없는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직업, 성, 신체, 능력의 차이를
차별로 대응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으로
죄를 짓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하나 나열할 수는 없겠지만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속속 떠오른다.
김지혜 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악의를 전혀 품지 않은 일반인이
어떻게 '차별주의자'로 인식되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평범한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차별을 생산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맨 박스'처럼
이 책의 정답도 결국 '수용성'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책은 '결정 장애'에 관한
저자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평소 다문화주의를 공부하고,
인권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교수님께서 어떤 모임에서
결정 장애라는 표현을 사용해
비판을 받은 일화다.
결정 장애라는 표현은 자칫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우리는 때로(물론 나도)
이러한 표현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며,
자신을 희화화하기도 한다.
저자는 모임의 참가자로부터
결정 장애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을 받은 뒤, 큰 반성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쓰였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로 책은 시작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목고와 일반고,
일반고 중에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특수 교실' 등 그 종류와 숫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물론 혹자는 여기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구분 지어놓은 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여기는 것이
정의라는 말이 있지 않냐고.
차이를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단지 이 사회가 '선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이 간극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을 경계하자는 의미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실 속에서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고 있는 지점들을
객관적 수치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지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무지라 함은 어리석다는 의미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무경험의 상태가 좀 더 적절해 보인다.
결국 내가 타인의 상황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얘기다.
그럼 결국 중요한 것은 수용성을 갖는 거다.
선량한 나의 언행이나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고,
배려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량한 마음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반발심도 생길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권 감수성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책 속에서도 예시로 등장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대사 중 하나다.
이 말에는 상대방의 나의 호의에 당연히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담겨있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호의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감사를 받아내기 위한
나의 권력 행위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나의 선량한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해서
선량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겠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대부분은 당신의 배려에
감사를 느낄 테니 말이다.
책은 선량한 일반인이
차별주의자가 되는 배경을 시작으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객관적 지표들이 많이 첨부되어있고,
문장이 대부분 명확하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비판의 여지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사람을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무지가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일반 독자에게 불편한 지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남/여 구분이 있는 화장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별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 짓는다.
화장실도 당연히 남자용, 여자용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늘어나는 트랜스젠더와,
신체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없는
사람에게 남/여 화장실의 구분은
차별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퀴어 퍼레이드를 가면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실의 성별을 구분 짓지 않는다.
일반 시민들은 이렇듯 단순하게 그러한
경향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인데도,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저자는 이러한 원인이 기존의 젠더 구분이
가지고 있는 권력 때문이라고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것을
알기 어렵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다양한 '무경험'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무지가 타인에 대한
차별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저자가 책 전체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이 책에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공정성, 능력주의에 관한 담론도 제시된다.
최근 조국 사태와 관련하여
생각해봄직한 문제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적극적 차별 외에도,
소극적 차별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