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퇴마사이야기

정세랑 < 보건교사 안은영 > 리뷰

by 스미스


보건교사_안은영.jpg


우리들은 흔히 '퇴마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거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팔에 염주를 끼고 있거나,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근엄한 남자의 얼굴.

아니면 적어도 부적을 차고 있거나

십자가 목걸이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게 일반적으로 퇴마사라는

단어에 느껴지는 무게감이다.


하지만, 누군가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플라스틱 장난감 막대기를 들고, 비비탄 총을 쏜다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렇듯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소재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귀신을 보고, 귀신과 소통할 수 있는 보건교사가

학교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작가의 위트는 보너스다.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 안은영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녀에게는 생각의 조각들이 눈에 보이는데,

이 조각들은 산 사람에게도 나타나고,

죽은 사람에게도 남아있다.


자그마한 생각들이 모여서 형체를 이루게 되는데,

안은영은 이 생각들을 없앨 수 있는 능력자다.


기존의 퇴마사가 그저 귀신의 형체를 알아보고,

귀신과 소통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안은영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각까지

약간 엿볼 수 있는 고급 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일반적인 하루는 고등학생들의 '에로에로'한 생각을

지켜보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안은영은 자신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이 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학교에서 어슬렁거리는 악귀를 물리치거나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나쁜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말하자면

'우리 동네 슈퍼 히어로'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캐릭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포인트를

한 가지만 꼽자면 바로 등장인물들의 콘셉트였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젠더성을 뒤집어 놓은 유쾌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영웅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여자 캐릭터는

조연일 때가 많다.


남자 주인공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고,

여자 캐릭터는 옆에서 보조를 해주는 한정적인 역할에

머무른 캐릭터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러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뒤집어놓는다.

바로 홍인표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다.


작품 속에서 홍인표는 부자일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를 곧 물려받을 위치에 있는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다른 작품이었으면 꽤나 권위주의적인 악역으로

등장할 법도 한 이 인물은 오히려 보건교사인 안은영에게

의존하는 역할로 묘사된다.


다른 사람들은 안은영이 부자인 홍인표에게 추근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안은영은 그를 그저 좋은 에너지가 나오는

보조배터리쯤으로 여긴다.


일반적으로 가지는 젠더성을

유쾌하게 뒤집어 놓은 측면이 매우 흥미롭다.


안은영이 악령을 쉽게 퇴치하도록

자신의 에너지를 빌려주는 홍인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소설 속 고정된 성 역할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준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이런 유의 작품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



이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보다는 만화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단순히 재미를 위해 썼다고 표현했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사회에 대한 비판이 느껴져서일 것 같다.


안은영이라는 가벼운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지만,

사실 소설 속에는 실제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성애 편견, 왕따, 편향된 교과서 문제와 같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을 우리가 마냥 재밌게만은 읽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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