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조커, 2019 >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꽤나 희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말의 순서를 뒤집으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하루하루는 비극이라는 의미다.
영화 < 다크나이트 >에서 '조커'라는 인물이
희극으로 그려졌다면
< 조커 > 속에서 그는 철저히 비극적인 존재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 플렉'이라는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희대의 악당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서 조커를 평범한 인물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아서 플렉은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어릴 적 받은 아동 폭력으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나오는 병을
앓고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트라우마는 가정 환경이나
형제자매처럼 선천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서 플렉은 평범하지 않게 태어난
평범한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영화는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가진 한 청년이
어떻게 조커라는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가 겪은
모든 비극들이 그를 악당으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커는
점점 악마가 되어가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우연히 저지른 지하철 살인을 통해 자신의
광대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보며
그는 묘한 존재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지적한다고 보기도 하지만,
나는 영화가 불평등을 소모하는 방식에
반기를 든다.
물론 '토마스 웨인'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집단이 영화 속에서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광대라고 낮추어 부르며 자신들이
광대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아서 플렉의 아버지로
묘사되는 토마스 웨인은 큰 저택에 살고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인
<모던 타임스>를 관람하는
소위 '강남 좌파'다.
그러나 자신을 찾아온
아서 플렉에게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며
아서가 가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한층 강화하는 캐릭터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단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확산시키는
캐릭터로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 살인이다.
애초 조커는 지하철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을 알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범행이 마치 기득권에 저항하는
혁명으로 여겨지는 것을 묵인했을 뿐이지,
그가 앞장서서 불평등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 영화가 우리 사회가
상징적인 인물을 소비하는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대의적인 명분으로 인해
범죄가 미화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비극의 대명사일지는 몰라도,
불평등을 개선하는 잔다르크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불평등을
드러내는 방식은 꽤 흥미롭다.
마블이 캡틴 마블이나, 블랙 팬서 등을 통해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면
조커의 DC 코믹스는 이를 파괴와 폭력을
동반하는 근본적인 개혁도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할 당시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 다크나이트 라이즈 > 개봉 당시
조커를 자칭하는 인물이
총기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소위 '인셀(incel, 비자발적 순결주의자)’
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범인이었는데,
인셀은 대체로 20~30대, 애인 없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조커는 인셀로 그려진다.
애인이 없으며, 젊고, 착각 속에서만
이성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대표적인 인셀인 조커가
사회 부적응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이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영화 속 조명으로 인해
작품 속 대부분의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거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커의 어머니다.
조커의 어머니는 30년 전
토마스 웨인의 가정부로 일했다.
그녀는 그 이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속해서 토마스 웨인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한계가 있는 어머니의 역할로 인해,
조커는 더욱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인셀로 대표되는 남성들의
범행의 '피해자'로 그려진다.
지하철에서 희롱을 당하던 여성부터,
아서 플렉의 상담을 맡았던 여성 상담가 등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이 다수다.
이러한 역할 수행은 현실의 인셀들이
실제로도 여성들을 남성들의 힘에
종속되는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이다.
고담 시에는 캣우먼, 할리 퀸처럼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캐릭터들이
충분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성 캐릭터들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한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을 전해준다.
사회 부적응자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스펙터클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된 이유에는
아이들이 자신의 광고판을 훔쳐 간 것,
복지 예산 삭감으로 인해 더 이상 상담을
할 수 없게 된 것과 같이
일상의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는 말이다.
또 대중들은 일반 기득권자를 향한 분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할 것으로 생각했던
기득권자들이 보이는 비도덕적 태도에
크게 분노한다는 점이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모던 타임스를 즐겨보던 토마스 웨인에게
사람들이 더 쉽게 분노한 이유다.
이 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영화 속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사회 부적응자였던 아서 플렉에서
조커로 바뀌는 상황을 다른 카메라 기법 없이
클로즈업만으로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는 과거 무성영화들이
보여줬던 몰입감을 다시 보여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