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좋아해요?

보람찬 실패 일기 두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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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무것도 안 하기'라고 대답하겠다.

거기에다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면 더욱 좋겠다고 덧붙이겠다.


오늘의 보람찬 실패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나다움'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나의 모습에 관한 얘기다.


'덜컹'

굳게 닫힌 스튜디오의 문을 살짝 들어갔다.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차단된 두꺼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스튜디오 안에는 5명의 어른들이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흥미로워하는 사람 몇 명과 누가 들어오든 전혀 무관심해 보이는 몇 명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딱히 편하지도 않은 면접용 정장을 입은 채로 준비된 의자에 어색하게 앉았다.


최종면접 전날 여러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이런 긴장감과는 다르게 면접장에서 내게 묻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나를 흥미로워하던 몇 명의 인물들만 질문을 했고 무감각해 보이는 어른들은 내 대답과는 관계없이

서류에만 눈을 맞추고 있었다.


"흡연은 해요?"

"주량이 어떻게 돼요?"


나는 흡연 여부가 업무 성과와 어떤 상관관계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주어진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다음에 돌아오는 질문은 "스포츠 좋아해요?"였다.


스포츠... 나는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나 야구, 농구 등은 기본적인 룰만 알고 있을 뿐이고

매번 챙겨보는 편도 아니다. 그나마 좋아하는 운동은 볼링이나, 탁구, E스포츠 정도다.

그 결과 나의 대답은 적당히 좋아한다로 이어졌고, 면접은 그렇게 실패로 끝났다.


면접이 끝난 이후, 나는 여러 방면으로 복기를 해봤다. 내 면접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스포츠' 답변을 문제 삼았다. 간단해 보이는 듯한 그 질문이 사실은 남자 기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체크하기 위한 아주 핵심적인 질문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스포츠를 적당히 좋아하는 나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한 남자 지원자로 평가받았다. 그들이 원하는 '남자다움'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실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포츠와 모범 인재상의 상관관계에 대해 100%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그들보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대신 인디음악에 좀 더 관심이 있고, 흡연을 하지 않는 대신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과연 어디까지가 업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인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이미 면접은 끝이 나고 난 뒤였다.


이 경험에서 한 가지 느낀 점도 있다. 그건 바로 '그런 척'에 신경 써야 한다는 거였다. 관심 없어도 관심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런 척은 솔직함보다 유용한 도구였다. 조금 더 단단해 보이는 외모를 만들어보라는 조언도 받았다. 취준생에게 경험을 과장하는 능력만큼 필요한 것은 면접에서 스스로를 가장(假裝)하는 능력이다.


'나다움'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를 잘 드러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실 얼핏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너무 어려운 용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다운 게 뭔지를 벌써 파악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면접에서 요구하는 나다움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되는 건지, 그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가면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언더커버를 다루는 영화에서 경찰이 힘들게 조직에 들어가는 것처럼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면 고정관념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번 실패를 통해 가장 뼈아프게 느낀 점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앞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기'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들의 '나다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로 타협을 시작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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