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찐따존'

보람찬 실패 일기 첫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어느 저녁,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 친구들 중 가장 사교성이 좋고, 활발한 성격인 친구의 전화였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들려오는 그 친구의 목소리에서 알코올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어 친구~ 별일 없제?"

친구는 대뜸 내게 안부를 묻더니 내가 대답할 시간도 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오늘 좀 기분이 안 좋아서 혼자 한잔하고 있다"


나는 내 또래집단에서 가장 유쾌한 편인 이 친구가 늘어놓는 진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친구도 역시 '찐따존'을 지나고 있는 듯했다. 얼마나 길게 이어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거친다는 그 시기 말이다.


사실 취준생이 취업을 하기 전, 가난한 경제상황과 공허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찐따존이라는 용어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아는 형의 글에서 이 표현을 처음 접했고, 그 이후 자주 사용하곤 하지만 이 단어만큼 이 우울한 시기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사춘기처럼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오지만, 그 강도와 길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듯하다.


유쾌한 친구 놈의 사연은 타인의 입장에서 들었을 때 사소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취준생인 친구가 인터넷 강의를 구매하려고 어머니에게 결제를 부탁했는데, 어머니가 이를 거절하셨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공부 압박을 주기 위해 나름의 충격요법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친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상처를 만든 셈이 됐다. 인강을 결제해주지 않는 어머니와, 이에 깊게 상처 받고 혼자 술을 먹는 아들. 얼핏 보면 두 장면은 모두 약간 유치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찐따존'이라는 배경을 놓고 봤을 때 한없이 진지한 상황이 된다.


그렇게 친구는 30분간 하소연을 하다 전화를 끊었다. 취업 후 가난한 연애는 싫다며 자신을 떠난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집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신세한탄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친구는 자기가 했던 말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 역시 굳이 그 아픈 기억을 되살려주지는 않았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내 주변에서 이러한 찐따존을 지나고 있는 친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찐따존에 들어서는 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벗어나는 연령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갓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취업을 걱정하는 것과 나이 30이 넘어서까지 첫 직장을 준비하는 것도 꽤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찐따존에 있는 사람들이 한 무리의 집단이라면 이 집단은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셈이다.


그러면 간단하게 이 시기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말해보고자 한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경향성은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일주일에도 몇 개씩 쓰는 자소서에 비해 돌아오는 피드백은 신통치 않을 때가 많다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입사시험에서 왜 떨어졌는지 일일이 통보해주는 법도 없다. 그러다 보면 이 시기에 있는 사람들은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내가 바보여서 그래' '내가 눈이 높은 거야' 이런 생각과 함께 낮아진 자존감은 스스로에게 실패의 책임을 전가시킨다. 찐따존에 있는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예민하고, 감정 변화가 잦은 것은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돈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취준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취업준비에서 돈은 필수적인데, 취준생은 돈을 벌기 힘들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데, 시간을 포기하면 취업과는 멀어진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취업이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찐따존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무서워한다. 최대한 쓰지 않고, 최소한으로 살아가야 한다. 돈을 아낄 수 있다면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어도 크게 문제가 없는 듯하게 느껴진다. 대학교 1학년 때 느꼈던 1만 원의 무게와, 취준생 입장에서 느끼는 1만 원의 무게는 천지차이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것에도 눈치를 보게 된다. 이는 특히 집(본가)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경향성인데,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눈치를 보는 거다. 예를 들어 저녁식사자리에서의 부모님의 사소한 말과 행동들이 신경 쓰인다. 이 행동들이 나의 취업준비를 독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향하는 곳은 인근 카페 정도다. 그마저도 커피를 사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렇듯 찐따존을 지나는 사람은 위의 3가지를 기본적으로 유지한 채 생활한다. 주변 환경의 사소한 변화와 말 한마디에도 감정 변화가 극심한 것은 평소 압박받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만히 집에만 있다고 하더라도 시험 보는 느낌과 전쟁터에 나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정도다.


그렇게 내게 30분간 신세한탄을 했던 친구는 지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취업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결국 인터넷 강의를 결제해주셨고, 친구는 매일 아침 집에서 나와 인근 카페에서 공부를 한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지고 학교 도서관이 다시 개관하면 도서관으로 옮길 예정이란다.

'취준생의 보람찬 실패 일기'에서는 나와 내 주변 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볼 예정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 픽션이 들어갈 수도 있다. 찐따존의 한가운데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이 이 시기를 무사히 벗어났으면 좋겠다. 훗날 이 글을 보면서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취준생과 어른들에게도 나의 보람찬 실패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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