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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Apr 30. 2020

타협한게 아니라 변화한 겁니다.

영화 해석 및 리뷰 < 두 교황(The Two Popes), 2019 >




액션이 많은 영화보다 잔잔하지만 대화가 많은 영화를 좋아한다. 감독들이 담아내는 대화의 장면에서는 감독이 전하고 싶어 하는 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앞서 리뷰했던 김종관 감독의 <더 테이블>과 같은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대개 그렇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울림을 주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 <두 교황>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두 명의 할아버지가 나와 진보와 보수, 변화와 타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영화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특징을 빼놓고 봐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들의 삶의 철학과 그것이 형성된 배경을 고스란히 따라가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노인들이 대화를 통해 드러내는 철학적 가치들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두 교황


영화는 가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인 '콘클라베'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특히 봉쇄된 공간에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생활해야 하는 각 국가 추기경들의 선거 장면이 흥미롭게 표현됐다.


성스러움의 대명사인 '교황'을 선출하는 장면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정치적 이합집산과, 각 후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드러나는 장면은 추기경들 역시 인간임을 보여주는 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선출된 베네딕토 16세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매우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나치 시대에 조력했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교황에 취임하고 난 이후 교회는 점차 보수화되어갔고,

영화 속에서 감독은 이를 매우 부정적으로 다룬다.


그러던 중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을 만나기 위해 교황청으로 향한다.

추기경에서의 은퇴를 위해 교황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성직자의 만남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 초반 베네딕토 교황과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만남은 그리 화목하지 못하게 그려진다.

각각 보수와 진보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잖은 듯하면서도 날선 말을 주고받으며

생각의 대립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재미있는 지점은 그들이 점점 친해져가는 장면들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피자를 나눠먹는 장면들을 통해 그들은 서로 가지고 있었던 오해를 풀게 된다. 

이에 더해 가톨릭을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공통된 의무감도 확인한다.


추기경직을 내려놓기 위해 교황을 찾아갔던 베르고글리오와 교황직을 내려놓고 싶어 했던 베네딕토 교황의 만남은 약간은 아이러니하지만 좋은 케미를 보여준다.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내용은 이쯤에서 그치고 영화가 닮고 있는 교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묘사되는 베네딕토와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대립은 이후 휴머니즘과 원칙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확인하면서 해소된다. 방법론적으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의 공통된 목적은 가톨릭교회의 부흥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성애, 미혼모에 대한 평가가 서로 상이하지만 

결국 어떻게 성경의 율법을 지킬 거냐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성경에 적힌 문자 상의 규율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베네딕토와 

인간 중심적이고 융통성을 강조하는 베르고글리오의 차이는 사실 그리 크지 않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화해에 이르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그들은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고 인간임을 인정함으로써 화해할 수 있게 됐다. 나치에 동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베네딕토와 군부독재를 막지 못했다는 베르고글리오는 모두 '죄'가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함께 위로의 말을 건네며 회개 기도를 드린다.

 

결국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고, 기도와 회개는 인간이 미완의 상태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두 명의 성직자가 보여주는 죄에 관한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약간의 위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베네딕토와 베르고글리오의 역할이 서로 바뀌는 장면이다.

앞서 보수의 대명사로 표현됐던 베네딕토는 교황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한다.교황의 자진사퇴는 매우 드문 일인데, 베르고글리오는 이에 크게 놀란다. 그리고는 그런 전례가 없다며 사퇴를 반대하고 나선다.


보수의 베네딕토가 진보의 베네딕토로 바뀌고, 베르고글리오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은

무엇하나 절대적인 기준이 없음을 보여준다. 전통을 지키는 것과 혁신을 하는 것, 매우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끗 차이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관객에게 절대적인 것이 없음을 반복해 강조한다. 그것이 몇 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종교라 하더라도 말이다.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TV 드라마를 즐겨보던 베네딕토 교황은 이제 축구를 즐겨볼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타협한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입니다.

삶은 본래 움직이는 것입니다.


영화가 건네는 이 메시지는 꽤나 시의적절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변화를 유도하고,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마련되지 않았다.


과거 어느 글에서 밝힌 것처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실수라도 했다가는 크게 도태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게 지내야 한다.


두 교황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자그마한 감동을 준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경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촘촘한 계층 사다리를 만들고,

옳고 그름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

과거의 행동 하나만으로 한 인물을 낙인찍는 언론.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관문들은 너무나 많지만 조금씩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렇게 잔잔히, 또 우직하게 변화가 진행된다면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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