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김혜윤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by alook

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끌린 책은 내게 큰 선물을 줬다. 작품이 작가의 말로 완성된다. 최근에 읽은 "작별인사(김영하)"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기계와 로봇에 생각만 들어 있는 존재들, 사고로 잃을 때는 너무 소중했던 존재가 온기도 없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귀찮음, 그 존재들이 망가졌을 때의 안도감, 기계에서 잘못된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더 알릴 수 없었던 영혼 등 다양한 마음이 든다.

주인공 라나, 그런 라나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은 외로워도 괜찮다는 듯 위로한 앨리와 앨리의 동생 터너, 라나의 보호자이면서 블랙박스에 들어간 로티, 작업현장 중력장의 문제를 전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이브, 자신이 인공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공의 문제에 다가가고자 하는 라나를 응원하는 준,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은 대표 모두.. 캐릭터가 참 인상적이다. 라나의 자신의 마음에서 괴물 진흙 덩어리를 보는 장면은 나를 생각하게 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이런 말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이제 진실의 한 종류다.'


그의 몸이 경험했던 생생한 삶은 작고 차가운 기계 속에서 어렵게 단어를 고르는 동안 굶주린 위장처럼 쪼그라들었다.


그즈음 나는 내 안에 질척 질척하고 더러운 진흙덩이 괴물이 산다고 생각했다. 괴물은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니기를 바랐다. 로티가 내 가족이 아니고 엘리와 터너가 내 친구나 이웃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 삶이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꿈이기를 바랐다. 이 지긋지긋한 날들이 뚝 분질러질 수만 있다면, 내 몸의 한 구석을 찢어 이 몸을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엘리에게 털어놓기에는 너무 끔찍한 진심이었다. 나는 그냥 입을 꽉 다물고 가슴속에서 들썩거리기 시작한 진흙덩이를 무참하게 뭉개버렸다.


나는 그런 빛을 영원히 바라보고 싶었다. 가짜라도 좋았다. 용서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와줘서 고맙습니다, 라나


준이 팔을 뻗어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그가 고마웠고, 걱정됐고, 내게는 과분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나와 더는 엮이지 않기를 바랐고, 앞으로도 계속 내 곁에서 나를 지지해 주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작가의 말

저의 언니 시윤은 발달 장애인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언니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저는 언니와 저의 삶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항상 부채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이 사회의 호의와 도움과 책임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19로 많은 발달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기 일상을 잃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는 이동권을 비롯한 장애인의 권릴르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라는 구호에 동의하지만, 그런 가정 없이도 누군가의 삶에 버젓이 존재하는 차별에 동의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타인의 삶을 알려하지 않고, 자신의 무지를 정치적 힘으로 여기는 것은 아주 비겁하고 비열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라나가 로티를 떠나 시작된 이야기이며, 로티가 아닌 라나의 이야기고, 저는 그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아직 라나가 로티와 함께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사이보그들이 질문이 없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완성한 후에도 그랬지만, 수상 통지를 받았을 때는 그 사실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이 이야기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읽어주신다면, 정말로 기쁘고 -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붙들려 평생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감히, 이런 이야기들을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내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동생 성윤과, 앞으로 더 행복할 시윤 언니, 존경하는 엄마 연정에게도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방금 이 소설을 다 읽은,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당신에게도 저의 부끄럽고 고마운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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