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 최은영

만남과 헤어짐

by alook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만남과 헤어짐이 존재한다.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은 지금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처음 만나 좋은 감정을 갖고 지내다 안 좋게 헤어질 수도 있고, 아쉽게 헤어졌다가 다시 재회할 수도 있으며, 영원한 헤어짐을 경험하기도 한다. ‘밝은 밤’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밝은 밤'의 사람들의 관계 속 작고 큰 사랑을 보며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밝은 밤’ 속 4대에 이르는 증조할머니(정선, 삼천), 할머니(영옥), 엄마(미선), 나(지연)는 모두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상처와 시대적 상황 속에서의 사람들의 상처를 보여준다. 상처는 지연의 집안에서 대물림되고 있다. 하지만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도 대물림된다. ‘헤어짐’으로 생겨난 상처는 새로운 ‘만남’으로 극복된다. “밝은 밤”의 등장인물들은 ‘만남’은 다시 ‘헤어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선택한다. 이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헤어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증조할머니랑 새비 아주머니가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서로를 모르는 채 살았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라는 지연과 할머니의 대화를 보면 만남 속 사랑은 헤어짐의 슬픔과 상처를 이겨내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밝은 밤"을 읽다 보면 내가 한 명의 등장인물에 이입하게 된다. 지연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연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입장이 된다. 삼천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삼천이에게 힘이 되는 새비 아주머니의 입장이 된다. "밝은 밤"은 책 속 인물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독자와 인물 간의 만남을 통해 직접 마음이 통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음에 깊게 와닿는 부분이 많다.


엄마는 남자와 사는 삶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도리어 엄마야말로 남자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때리지 않고 도박하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만 되어도 족하다니, 인간 존재에 대한 그런 체념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도 너희 아빠 같은 사람이 없어."

몇몇 사람은 가부장적 사고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고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가정에 무관심한 남자는 '무뚝뚝한' 남편으로 포장되고 집안일을 하는 남자는 '가정적인' 남편,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편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체념"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남성에 대한 차별이다. 이 책은 성별에 따른 다른 기준과 그 기준이 여성들에게 어떠한 상처를 줬는지 보여주며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 아바이가 백정이었단 기요.
-고생 많았댔어요. 아즈마이. 고생 많았댔어요.
... 자기가 한 밥을 먹고 맛있다고 말해준 사람도 증조모에게는 새비 아주머니가 처음이었다. ... '어마이, 나는 사람들한테 기대하는 거 아니라요.' 증조모는 생각했다. '나는 새비한테 기대하는 기야.'

자신이 차별받았던 이유인 "백정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증조모의 모습과 그 사실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대응하는 새비 아주머니의 모습은 눈물이 나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된 첫 발판이 이 장면에서 나타난다. 둘은 서로의 만남으로 이후 혼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힘든 일도 극복할 수 있었다. 둘의 관계는 진정한 만남의 힘을 보여준다.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새비에게 기대하는 것이라는 말은 사랑을 말로 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따뜻함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도 이런 서로만을 위한 관계가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우와 호숫가를 걸으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

"끝은 결국 같아. 너랑 나도 헤어지게 될거야.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그럴 거야."

"허무해?"

"앞으로 남은 인생이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벅차."

"지금 그런 생각 드는 거 당연해. 그래도, 지연이 너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 알잖아."
"언젠가 마음이 바뀌면, 그때 나한테 얘기해줘." 지우가 말했다.

내 마음이 언젠가는 당연히 변할 것이라고 확신하듯이.

만남은 헤어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남을 이어나가자는 지우의 말은 이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생이 헤어짐의 연속임을 알지만 우리는 만남을 이어나간다. 만남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힘은 헤어짐이 주는 상처를 치유해 주고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남은 헤어짐을 낳지만 그 헤어짐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이 부분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된다.


내레 삼천에서 태어났다믄, 삼천이 너를 어린 시절에 만났더라믄 어떻게든 널르 나쁜 사람들한테서 지켜줬을 기야. 내가 이래 보여도 싸움을 잘했다, 삼천아.

... 너에게는 체로 거르듯이 거르고 걸러서 가장 고운 말들만 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러지를 못했다.

... 인제 나는 꽃을 봐도 풀을 봐도 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어.

... 그냥, 그냥 네가 내 곁에만 있어줘도 그걸루 나는 괜찮을 텐데.

-희자 아바이 말고 내 위주로 생각한다고 욕해도 좋다. 그래두 난 희자 아바이가 살아 돌아오고, 그렇게 살아서 나랑 희자랑 같이 지냈던 시간이 좋았더랬어. ... 희자 아바이가 어떤 모습이어두 내 곁에 있잖아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 상처 준 것을 후회하는 마음,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되는 존재,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존재 모두가 사랑이다. 새비 아주머니가 삼천이에게 느끼는 지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새비 아주머니가 남편과 무슨 형태라도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사랑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사랑 덕분에 우리는 힘든 상황을 버텨낼 수 있다. 이 사랑은 서로에게도 힘이 되지만 이 모습을 바라보던 할머니와 지연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힘이 된다. 그게 시대적 상황이든 개인적 마음이든 사랑으로 다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이 생긴다.


친구들은 내가 잘 사는 것이 전남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라면서 앞만 보고 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러려고 노력했다.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신경쓰기 않으려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잊으려고, 현재에 집중하려고, 괜찮아지려고 했다. ...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칠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우울과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익숙한 구덩이로 떨어졌다는 지연의 말을 보며 과거의 내 모습도 같이 떠올랐다. 감정을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 순간 내 노력들이 무력해지는 거 같아 더욱 우울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굴러 떨어졌던 지연은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지연이 나의 모습과 같아 더 응원하게 된다. 이런 내 마음을 보며 날 그 누구보다 응원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 남선의 모진 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따뜻한 사랑은 차가운 무관심을 이긴다. 차가운 무관심에는 단련될 수 있지만 따뜻한 사랑에 우리는 언제든지 녹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사랑을 자주 그리고 멀리 퍼트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다.

남자 아이돌 "인피니트"의 "추격자"라는 노래에는 "내 사랑이 이겨"라는 가사가 있다. 상대가 무엇이든 내 사랑이 다 이길 수 있다는 말은 마음에 크게 와닿는다. 그래서 이 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밝은 밤'도 이 가사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 그 어떤 고통도 사랑을 통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인물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랑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밝은 밤'은 내게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을 가르쳐준 책으로 기억 남을 것이다. 사랑은 만남을 원하고 만남은 헤어짐을 낳아 상처를 주지만 사랑이 이를 감싸준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선, 영옥, 미선, 지연, 새비, 지우, 희자, 희자 아버지, 명숙 할머니 등 '밝은 밤' 속 인물이 나에게 깊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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