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고 한 달이 흘렀다.
어렸을 때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웠다.
다 커서는 생각이 너무 없어서 괴롭다. 지금이 딱 괴로운 시기다. 생각이 없어서.
오늘이 3월 8일이면 지난 2월 8일로부터 꼬박 한 달을 채운 날인 셈이다. 그동안 잘 쉬고 즐겼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애써 이야기를 다른 주제로 돌릴 것이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뚜렷한 목표도 없이 사회로 방출당한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는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바꾸고 봄옷을 장만하고 핫하다는 에어팟도 샀다. 그런데 그 시간의 사이사이에 멍함과 공허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계곡에 내려앉은 낙엽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휩쓸리듯이 살았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써대는 것뿐이었다. 지난 시간들을 즐기기는 했다. 아무런 기억도 없이 소득도 없이 즐겼다.
알바를 구하려고 노력했다. 노력의 정도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못 미칠 지라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자신 없는 일에 무턱대고 들어가서 일을 망쳐버리는 것보다는 손에 맞는 일을 찾아서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전역하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게 경력직이라는 수식어는 하늘의 별과 같은 말이었다. 여건이 애매해서 어중이떠중이가 돼가고 있었다. 당장 복학을 하지 않겠다는 대책 없는 주장과 서울로 올라가자는 친구의 말에 동조한 허무맹랑함은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을 가려내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해도 되나, 하지 말아야 하나, 계속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내 생각은 그렇게 지워져 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게 살아갔다. 아니 살아졌다. 심장이 계속 뛰니까, 아침에 눈이 떠졌으니까, 숨이 계속 쉬어지니까 살아졌다.
경각심이 들었다. 이대로 살면 집에 틀어박혀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까먹을 수도 있겠다. 도태되겠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겠다. 무서웠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알바를 구하려고 했다. 그래서 여러 곳을 면접을 보고 채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애매함과 우유부단함, 배려심이 일을 자꾸 그르쳤다. 조만간 서울로 올라가자는 친구의 제안이 알바를 하기에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원래 알바가 금방 뽑고 금방 그만두고 그런 거라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면접을 진행할수록 수당을 깐깐하게 책정하고 불법을 편법으로 둔갑시키는 업체들에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꿈꾸었던 제대 후의 삶은 드라마였다. 내 환경은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었고, 나는 주인공도 아니었고, 당장 꼬질꼬질한 고민거리에 전전긍긍하는 등장인물1이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한 달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