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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May 27. 2019

레이첼 카슨과 권력에 대항하여 불편한 진실을 외칠 용기

침묵의 봄 서평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과 권력에 대항하여 불편한 진실을 외칠 용기


철학자 앨런 와츠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상호 연관된 자연에 대해 사색하면서 이렇게 썼다. “삶과 현실은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지 결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Life and Reality are not things you can have for yourself unless you accord them to all others) 그가 이 말을 한 시기가 1950년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이 서구인들의 눈에는 낯설고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생각이 존재에 대한 근본적이고 당연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철학자가 아닌 한 여성 과학자였다. 지구의 생태계에서 거만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인간을 끌어내리고 무수한 유기체 중 하나로 인간을 재구성한 레이첼 카슨은 생물학계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릴만하다. 그녀의 힘은 과학에 관해 쓰면서도 문학성과 시적 감수성을 잃지 않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자연세계의 현상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며, 과학이라는 강철을 경이라는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처럼 느껴진다.



토양을 ‘서로 연결된 생물들로 촘촘하게 짜인 거미줄’에 비유하는 대목은 소설의 한 장면을 읽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과학과 문학성을 잘 조화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글쓰기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과학자인 동시에 과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라는 그녀만 가진 독특한 이력에서 비롯된다. 원래 레이첼 카슨은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정말 좋아했으며 글 쓰는 데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10살 때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서 어린이 문학잡지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펜실베이니아 여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다.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가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는 방법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항상 부족해 카슨이 책을 읽을 때 어머니가 글을 타자기로 대신 쳐주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여성 동물학 교수를 만나는데 그녀를 흠모했기에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꾸게 된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유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려 했지만 가정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결국 대학을 떠나 노동 강도가 센 직장을 구하게 된다. 



그녀는 국가의 물고기와 야생동물 관리부서에 해양생물학자로 취직한다. 그녀의 글쓰기 재능은 곧 두각을 드러냈고 결국에는 부서 전체의 편집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일을 하면서 쓴 책이 <바닷 바람을 맞으며>인데, 이 작품을 통해 성공한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침묵의 봄이라는 다소 도전적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권력을 향해 불편한 진실을 소리 높여 외쳤다. 카슨이 자연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를 목격하면서 도덕이라는 바다에 내렸던 닻을 올린 과학이 표류하며 야기한 의도치 않은 결과에 놀랐다. 그것은 윤리라고 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더는 듣지 못하는 인류였으며, 기술에 대한 광적인 열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전쟁 시기의 과학과 기술의 결과들 중의 하나는 DDT의 무분별한 사용이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로부터 군인들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이 독성 화학물질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기적의 물질로 칭송받았다. 책에 나오다시피 사람들은 병을 막기 위해 DDT를 뿌리고, 비행기는 해충을 죽여 작물 생산량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DDT를 대량으로 뿌려댔다. 비행기가 근처 땅들에 DDT를 뿌려대는 것을 보는 것이 점심 먹는 학생들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일종의 눈 먼 신념이 이러한 살충제 사용을 용인했고, 무관심한 정부와 궁금한 것이 없는 대중들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잘못을 지적할 필요가 있었고, 이러한 필요에 따라 카슨은 <침묵의 봄>을 쓰게 된다. 환경 운동이라는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한 최초의 불씨이자, 환경에 대한 현대인의 의식을 일깨운 책이었다. 그러나 책은 나오자마자 환경 파괴의 주범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샀다. -이들은 환경 보호의 책임으로부터 아예 눈을 감아버린 정부와 탐욕스러운 농업과 이윤을 극대화 시키고 비용을 최소화시키기로 결심한 화학 산업이었다. 이미 공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기업의 의도적인 귀 막음에 대한 그녀의 고발장 때문에 불편한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공격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까 내리려고 했다. 그녀를 깎아내리기 위한 선전 캠페인을 하거나 그녀의 책을 낸 출판사에 쉬지 않고 소송을 걸어 괴롭혔다. 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가장 빈번했던 비난은 하나였다: 그녀가 여자라는 것. 전 농업부 비서였고, 나중에는 몰몬교의 선지자가 된 에즈라 태프트 벤슨은 물었다. “왜 자식도 없는 노처녀가 그렇게 유전학에 집착하는가?” 그는 자기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가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카슨은 침착함과 자신감으로 비판을 묵묵히 견뎌내었다. 그러나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1960년에 암 판정을 받았는데, 이때는 의사의 무관심으로 인해 벌써 암이 온 몸에 퍼져버리고 난 뒤였다. 1963년 <침묵의 봄>은 케네디의 관심을 끌었고, 그가 해충제 사용을 규제하는 것을 고려하기 위해 카슨을 보자고 했을 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집을 나섰다. 암에 의해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고 방사능 치료에 의해 온 몸이 지친 상태였다. 



카슨은 공격들을 참았다. -암이 가하는 고통도 공격이었지만 그녀의 비평가들이 가하는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전자를 삶의 순환에 대해 생물학자로서 수용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후자는 항상 예측하던 일이었다. 그녀는 이상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순진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는 <침묵의 봄>이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혁명적이 되는 것은 그녀의 도덕적 의무에 가깝다고 여겼다. 이러한 것은 그녀의 도로시 프리먼(여성)에게 보낸 편지에 잘 드러난다.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평생을 사랑했던 연인이었던 도로시 프리먼과는 인간의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관계였고, 편의상 동성애에 가장 가깝다고 말해진다.



“중요한 무언가를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외칠 기회를 갖는 것은 의무인 동시에 특권이라고 내 양심이 말하고 있어.”



카슨은 죽고 나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데, 그녀가 촉발시킨 정부 정책의 변화와 환경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볼 때까지 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정치인들 무리에 의해 그녀가 어렵게 성취한 환경에 대한 대중의 의식이 위협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16세기 덴마크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의 말을 떠올린다. “헛되이 산 것 같지 않게 하라” 티코 브라헤는 우주와 그 안에 우리가 사는 장소의 이해에 대해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레이첼 카슨과 비슷하다.

레이첼 카슨이 헛되이 산 것처럼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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