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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May 27. 2019

개인의 불안은 사회에서 비롯된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 서평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 가장 좋은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신문 사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잘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와 주제의식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시의적절한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우선적으로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사회적 지위로 인한 불안’임을 알려주고, 필요한 개념을 정의해준다. 그러고 난 뒤 논지를 전개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시되는 사례가 적절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필요한 말만 정확히 전달하는 것 같았다. 주제나 논지와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례나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례를 가져다 쓰는 글은 장황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도 비약이나 무리가 있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 어느새 공감하며 책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참신함과 독창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그러한 것을 기대하고 읽는 독자라면 ‘뻔한 소리를 길게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맨 앞의 2페이지에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체 내용이 응축되어 있다.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중략)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지위에 대한)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설이나 신문기사도 헤드라인이나 맨 앞의 문장에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핵심을 담고 있고, 내용을 전개해나가면서 맨 앞 핵심에 대해 부연하고 설명하는 두괄식 서술을 취한다. 


차례를 보면, 이 책의 장은 크게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지위로 인한 불안’에 대한 ‘원인/해법’이다. 이것은 저자가 다루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가장 적절하게 접근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원인’과 ‘(인문학적)해법’이라는 핵심을 잘 정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분석한 원인은 ‘사랑결핍/속물근성/기대/능력주의/불확실성’으로 크게 5가지가 있고 해법은 ‘철학/예술/정치/기독교/보헤미아’ 5가지로 꼽는다. 이는 책을 쓰기 전에 내용의 전체 구조가 저자의 머릿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어쨌든 독자는 차례만 읽어도 저자가 무슨 얘기를 하고싶어 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가장 내밀한 감정도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 개인의 불안 가운데 많은 부분-특히 그가 다루는 지위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불안의 강도도 더 커졌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경쟁과 성취주의, 능력주의 때문이다. 지위는 그 사람의 미덕을 나타내는 표지이며,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능력주의’ 때문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는 지위에 대한 갈망은 더 증가하였다. 그러나 점차 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환경은 인간의 통제범위를 계속해서 벗어난다. 지위는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않아 사람들은 자신이 손에 넣은 것을 언제 잃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애정을 요구(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며, 외면 받고 무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현대인들은 큰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고착상태에 빠져있다.



반박의 여지없이 맞는 말이라, 독창성과 창의성을 느끼는 데에 읽는 재미가 있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논리 전개와 풍부한 역사적 사례에 읽는 재미가 있다. ‘번개처럼 내리치는 진리’, 내가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돈오’ 같은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켜주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깔끔하게 정의해줌으로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을 확인시켜주는 느낌의 책이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고, 모호한 것을 정의해줌으로서 부당함에 대항하고 실제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이 유행인데, 이러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무기가 아닌가 싶다. 



결국 ‘풍부한 사례’와 ‘모호한 것을 정리해주는 것’을 통해 독자는 자기 개인의 삶을 비추어보며 위안과 공감을 얻는다. 맑은 호수와도 같은 전체 속에 자기 얼굴이라는 개별적인 삶을 비추어 봄으로서 반성의 시간을 갖고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하며 사회 속으로 나아간다. 나 또한 그랬는데, 일반적인 원리를 읽는 것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속물근성’을 정의하는 부분에서는 나의 조부가 떠올랐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중략) 속물이란 하나의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조부도 여러 가족 구성원들을 사회적 지위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자기 마음속에서 순위를 매기고, 그 순서에 따라 사랑을 표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높은 지위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을 충실하게 따르면, 지인들에게 그 사람 이야기만 떠벌리고 다녔으며, 그렇지 못한 가족구성원들은 자연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사람이 가진 다른 훌륭한 내면적인 자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동생은 ‘높은 지위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에서 스스로가 일탈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관념들이 상대적인 것임을 깨닫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비추어보면 부질없게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책을 이렇게 끝맺는데, 내가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도 아주 약간은 있다. 이 책의 원제는 “Status Anxiety”이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알랭 드 보통은 ‘지위로 인한 불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한국어판 제목을 ‘불안’으로 퉁 쳐 지음으로서, 원작자의 의도를 다소 오해하는 독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불안이 여로 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불안에는 여러 측면이 있지만 ‘사회적 관계와 위계에 의해 야기되고, 또 그와 관련한 불안’만을 다루려고 한 것이 원제에는 잘 드러난다. 반면에 한국어판 제목을 보면 불안은 사회적 관계와 지위에 의해서만 발생하고, 그와 관련해서 이해는 것만이 가장 본질적인 접근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로 인한 불안은 인간이 겪는 불안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인간이 처한 실존적인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불안, 뇌신경이나 호르몬에 문제가 있어 발생하는 불안, 트라우마로 다가오는 개인적인 체험이나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 등 책이 다루고 있지 않는 다양한 불안이 존재하지만, 제목을 그냥 ‘불안’이라고 너무 포괄적으로 지어버리면 이러한 측면이 잘 부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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