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관점

김학의 사건과 페미니즘, 그리고 비페미니즘

by 이슬빛

본인의 생각에 기반하여 쓰여진 글이 아니라,

비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글이 길다 싶고, 핵심주장만 알고 싶으면 맨 밑으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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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 시도를 계기로 검찰의 재수사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22일 밤 외국으로 빠져나가려다 인천공항 탑승게이트에서 제지당한 김학의씨의 행동이 재수사에 불을 댕긴 꼴이 되었다. 빠르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성접대 뿐 아니라 과거 수사를 방해했던 세력의 전모가 한 점 의혹 없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특히 김씨가 건설업자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고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 외에 6년 전 경찰 수사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수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구체적인 주장이 최근 제기되는 점을 주목한다. 2013년 3월 경찰이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의 동영상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들어가자 청와대가 강하게 ‘중단 압박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청와대는 경찰의 내사 사실을 알고도 며칠 뒤 김학의씨를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했지만, 성접대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김씨는 결국 차관직을 그만뒀다. 더 가관인 건 그 이후 청와대가 경찰에 가했다는 ‘보복’이다. 청와대의 경찰 수사 외압과 보복 인사 문제는 성접대나 성폭행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심각한 권력의 타락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경찰 때문에 고위직 인선에 흠집이 났다고 생각한 청와대는 경찰청 수사국장부터 실무책임자인 특수수사과장까지 수사 라인을 전원 교체했다고 한다. 끔찍한 범죄 혐의자를 단죄하기보다 오히려 차관으로 중용하고 이를 수사한 경찰 간부들은 줄줄이 좌천시켰다니, 집권 초기부터 ‘박근혜 청와대’의 도덕적 불감증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김학의씨를 당시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그 오명을 이번 재수사에서 털어내야 할 것이다.

-3.25 한겨레 사설 요약


김학의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사건을 통해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얼마전 MBC에서는 “이번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성폭력 문화가 얼마나 일상적이고 만연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는 멘트를 보도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강간문화나 강간 판타지가 발현된 사건으로 간주하며, 이를 통해 일상의 남성문화에 대한 죄의식 주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남성 카르텔 프레임 아래서는 애초에 버닝썬 폭로 사태를 촉발한 폭행 피해자가 남성이었다는 사실, 그가 보복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여성을 보호하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단톡방 내용에 대한 제보자 역시 남성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문제의 인물에 대한 높은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심지어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폭행사건이 터진 초기부터 버닝썬과 공권력(경찰)의 유착 관계를 의심해왔다. ‘남성 카르텔’ 프레임은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자본 카르텔을 붕괴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버닝썬 사건은 역으로 이러한 카르텔에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이 있음을 시사한다. 비열한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도 건전한 이성과 규범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혹은 모종의 이유로 그런 규범의 압력에 순응해서 폭로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만히 보면 자신만의 ‘사적인 정의’에 취한 사람일수록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근거로 사회 전체를 정화해야 한다는 일부 히어로 영화 빌런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들은 모두 부분과 전체를 동일시하는 윤리적 궤변에 의존한다.


메갈리아가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이다. 메갈리아는 남성들의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미러링이라는 명분 자체도 허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메갈리아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여성유저들은 일베 언어를 따라하고 혐오발언을 일삼아 왔다. 성소수자에 대해 똥꼬충이라고 부른다든지, 스크린도어 정비하다 죽은 남성 노동자에게 태일해라고 조롱한다든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젠신병자라고 욕한다든지 하는, 메갈리아식 혐오발언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이렇게 원래 혐오 발언을 일삼던 집단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러링이라는 명분을 나중에 꾸며낸 것일뿐이다. 페미니즘이 잘못한 지점은 메갈리아와 같은 인터넷 혐오신드롬이 연원한 경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은채, 자신의 막연한 추측으로 메갈리아가 '일베에 저항한다'는 의미부여를 하는 부분이다. 애초에 메갈리아는 미러링을 하는 집단이 아니라 여초 커뮤니티 내부에서 혐오발언을 일삼은 일베의 쌍둥이 집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관계를 완전히 잘못 파악한 것이다. ‘여성혐오에 대한 인지를 하게 했다’고 주장하지만, 본인들 스스로가 혐오의 주체였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사태의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별과 불행을 겪는 영역과 남성이 차별과 불행을 겪는 영역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경력단절의 문제를 겪는다면 남성은 그만큼 초과근무와 산업재해를 겪는다. 이러한 각자의 고통과 차별 그리고 소외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이 피해자이고 약자이고 모든 피해호소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이 어떻게 성평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구조적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남성중심사회가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심 또한 존재한다. 성차를 다룬 책 <소모되는 남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높은 사회적 지위에 남성이 많이 분포하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이 차이가 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성차에 따른 결과 이며 이는 능력에서가 아니라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 여러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양성 간 성차는 필연적으로 그 트레이드오프를 동반하며, 남녀의 우위와 열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양성은 상호보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문화는 타 문화권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고 궁극적으로는 번영하기 위해 양성 모두를 착취하므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남녀간 지위 및 임금 불평등은 성별 하나만을 단일변수로 설정해 파악할 수 없는 문제이며, 환경, 성적 특성, 교육, 배경 등등 모든 것이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별은 고려해야 하는 무수한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남녀간 기회의 평등은 주어져야 하고, 나 또한 여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을 요구할 수는 없다. 결과에 개입하는 무수히 많은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열심히 노력해서 10을 얻었는데, 어떠한 노력도 들이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10을 요구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남녀 간 결과의 평등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주장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해서 둘의 수명을 같게 하기 위해 여성의 수명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사회가 여성의 감정과 사고를 배려하고, 여성의 권리를 제도화하려고 노력하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을 도외시하고 인구의 절반을 논의에서 배제하고 죄악시하는게 무슨 도움이 될까?


여성을 일방적인 약자/피해자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는 페미니즘의 논의 구도로는 절대로 젠더 이슈와 사회적 연대와 합의에 다다를 수 없다. 지금의 젠더 싸움은 단순히 젠더의 싸움으로 국한해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확히는 계층, 세대, 지역 등등 사회 전방에 걸친 상호투쟁이다. 이것은 그만큼 국가가 구성원들의 입장과 갈등을 중재할 힘을 잃었다는 징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젠더갈등은 이익을 분배하고 갈등을 중재할 국가가 아무런 사회안전망을 확보를 비롯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채, 효율과 성장의 논리로 개인들을 만인 대 만인의 경쟁에 내몰아버렸고, 그렇게 해서 경쟁에 상처받은 개인들이 내면에 풀지 못하고 계속 쌓아두던 분노가 어떠한 계기를 만나 발현된 것이다. 따라서 성의 전쟁을 풀어나가려면 먼저 최저임금인상, 동일임금제같은 사회안전망 확충부터 시작하는 경쟁의 부작용 해소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김학의 사건을 바라보자. 김학의 사건은 한 개인의 부도덕함과 이를 감싸주려는 정부의 비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부도덕함에서 비롯된 범죄에 모든 남성이 연루되어 있으며 모든 여성이 그로 인한 피해자라는 관점에는 비약이 있다. 김학의 사건을 비판적으로 보며, 그것을 고발하고, 방지하려는 무수한 남성이 있는데 남성이 이러한 범죄에 공모했다고 보는 것이 정말로 타당한가? 페미니즘은 기득권을 가진 남성들이 문화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김학의 사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사회 탓, 남성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을 갖게 만들고, 공포에 시달리게 한다. 이러한 공포와 죄의식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며, 우리 사회가 건전한 방식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을 방해한다.


페미니즘은 성범죄가 인간의 성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권력 과시욕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권력자가 상대적 약자에 폭력을 가한 김학의 사태는 페미니즘이 활용하기 좋은 떡밥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권력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약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무수히 많은 남성들도 불평등을 겪는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그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해소해 줄 수 없다. 불평등은 실제로 인종,세대,종교,민족, 성별을 가로지른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문제를 이분법적인 남녀대결구도로만 몰고간다.


남자는 기득권이고 강자이며, 여성은 약자라고 규정짓는 것은 편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애국자, 너는 빨갱이라고 편가르는 예전의 종북이념놀이랑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여성 남성으로 양분하기에 세상은 훨씬 복잡하다. 여자끼리도 소득격차가 크다. 또한 여자들은 성공한 소수의 남자들을 일반화시켜 기득권이라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도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여자는 무조건 약자가 아니라는 증거도 많다. 단지 물리적인 폭력만 남자가 많을 뿐이지 다른 가해는 성별의 차이가 적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공정함'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많은 20대 청년들이 페미니즘을 향해 분노하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에 경도되면, 성차에 비롯된 인간의 본능 문제-범죄의 주된 동기-를 심도 깊게 다루지 않게 됨으로서 실제적인 범죄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다른 김학의가 등장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냐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페미니즘의 관점을 통해서는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 여성의 삶이 나아졌는가? 여성할당제를 하면 여성의 삶이 나아지는가? 현실적 문제로 가면 성별은 여러가지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페미니즘이 근거하는 정체성론은 현실의 문제를 설명하지도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그 결과로, 젠더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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