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입장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가능한 한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페미니즘에 동의할지 아니면 거기에 대해 반대할지 가능한 한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의 주장을 인용한다. 남녀의 성차를 연구하여 페미니즘을 불쾌하게 하는 진화심리학이나 페미니즘의 기본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안티 페미니즘의 주장을 옹호하며 페미니즘은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느니 하는 사람을 만나면 최대한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설득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원하지 않는 평가를 얻는 때가 많다.
술자리에서 한 여자 아이가 페미니즘 관련 강연을 갔다 온 이야기를 하면서, 페미니스트를 ‘꼴페미’라고 비난하며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의 통계 수치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OO아, 너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어’라고 했다. (일방적인 비난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일전에 그 여자아이는 내가 젠더 문제와 페미니즘에 대해서 다른 남성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점을 높이 산다고 했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현 세대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에 대해 원인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매우 혼란스러우며, 이러한 혼란에 대해서는 조지 피터슨이 자신의 책을 그런 식으로 제시했듯이 ‘혼란의 해독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서도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두고 양비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남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여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남성이라는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 자체가 남성에 편향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다. 그런 견해들은 자신만만하게 주창될 수도 있고, 나무나 하늘처럼 존재의 기본 구조에 속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어떤 정치적 관점에 따르면-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현실적 또는 심리적 이해관계를 옹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지주 계급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부가 본래 고귀하다는 개념을 주민 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심지어 이런 체제에서 손해를 보는 많은 사람들도 그런 개념을 받아들인다). 몇몇 사람들에 따르면, 남성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남성이 누리는 특권이 당연해서 그것이 특권이라는 것도 두드러지지 않으며, 이것이 이데올로기이다.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분석을 통하여 남성주의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그 뇌관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렇게 해야 어리둥절한 채 우울한 표정으로 대응하던 태도를 버리고, 눈을 똑똑히 뜨고 차별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에 둔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거기에 반대되는 입장을 제기하면 실보다는 득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대의 입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그 문제에 대해 실제적인 생활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면, 양 측 모두가 반대되는 입장에 맞서 자신의 스탠스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스스로의 논리를 정교화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나마 공론장을 만들고 합리적인 토론과 건설적인 논의를 전개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램이라고 말하기도 너무 거창하다. 그렇게 멀리 갈 것 없이 요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용은 좋아 보이지 않지만, 제목은 잘 지은 것 같다. 페미니즘이든, 안티페미니즘이든, 비페미니즘이든 삶의 실제적인 지침이 되고, 무기가 되려면 각자의 논리를 좀 더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데블스에드버킷(devil's advocate: 열띤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자처한다. 그것이 하나의 정치의식으로서 태어난 페미니즘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지위를 분배하는 원칙이 과연 무엇인가? 합당한가? 라고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러 집단이 스스로 존엄을 얻고자 이전체제에서 이익을 보던 사람들과 맞서 공동체의 명예 체제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집단은 투표함, 파업, 때로는 책을 이용해 높은 지위를 누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공동체의 관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