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에 빗댄 인간사 이야기
<토이스토리3>를 지인에게 추천받아 보았던 게 엊그제 일이었던 것 같은데, <토이스토리4>도 명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토이스토리4>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장난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인간관계와 거기에서 생기는 현실의 고민도 담아내고 있다.
일단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아직 안본 사람이라면 이 문단과 다음 문단을 패스할 것을 권한다.) 카우보이 장난감 ‘우디’는 다른 장난감 친구들과 장난감 주인 ‘앤디’에게 헌신하며, 화목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중 한 친구가 ‘보 핍’이라는 공주 인형이었다. 그러나 앤디가 ‘보 핍’을 상점에 팔아버린다. 우디는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보 핍’도 ‘세상에 아이들은 많아. 거기에 목매지 않을거야’라는 말을 남기며 앤디와의 관계를 청산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디의 주인은 앤디에서 보니로 바뀌었고, 새로운 인형 친구 포키가 합류한다. 보니가 포크로 급조하여 만든 인형인 포키는 여러 면에서 다른 장난감 친구들과 다르지만, 우디는 ‘우리가 지켜줘야 해’라며 포키를 환영한다.
이런 포키가 위기에 처했고, 우디는 포키를 구하려고 모험하는 과정에서 옛 친구인 ‘보핍’을 다시 만나게 된다. 보핍은 장난감 주인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우디와 헤어지는 순간에서도 보핍은 그것이 장난감의 숙명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보핍은 계속해서 버려지는 삶을 끊고, 주체적인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장난감으로 변한다. 그리고 포키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디와 극명하게 대립한다. 첫 번째 구출 작전이 실패하고, 포키를 구하러 다시 ‘악당들의 소굴’로 들어가려는 우디에게 ‘이쯤하면 되었다고. 포키만을 위해 다른 장난감 친구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핍은 우디와 함께하지 않는다.
이 때 사명과 본분을 중시하는 우디와 현실적이고 자유롭고 개인적인 삶을 강조하는 보핍은 극명하게 대립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가 옳다, 그르다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단지 관점이 다른 것일 뿐이다. 이러한 차이는 살아왔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둘 모두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보핍이라는 여성캐릭터는 언젠가부터 디즈니가 여성캐릭터를 강인하고 주체적이며 자의식강한 인물로 설정하는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디즈니가 전형적인 공주캐릭터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나름 반가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보핍은 생김새부터가 상당히 현대적이다. 크고 강한 눈빛의 야무진 눈도 그렇고, 질끈 동여맨 포니테일 머리도 그렇다. 보핍의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은 물광피부를 연상시킨다. 예전에는 우아하고 화려한 긴 머리를 한 공주님들이 디즈니의 주된 캐릭터였다면, 이제는 치마를 벗어던지는 대신 바지를 입고 망토를 두른 보핍과 같은 캐릭터가 대세이다. 망토는 오래전부터 권위를 상징하는 의상으로서, 주로 지배층이 입었고 길고 화려할수록 착용자의 권위가 강조되었다. 보핍의 망토 색깔인 보라색은 고대황제와 권위를 상징한다. 양치기의 지팡이는 권위와 자신만의 영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교황들도 들고다닌다. 특히 보핍 어깨에 항상 올라타있는 여경은 보안관 우디와 비슷하긴 하지만 성이 다르고, 훨씬 현대적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한편 우디는 장난감 친구들, 장난감 주인을 비롯한 모든 관계에 충실하고 헌신한다.
우디는 보니를 끔찍이 아끼며, 어딜 가나 보니 이야기를 한다. 그가 보니에 대해 ‘보니는 이랬지. 저랬지’ 하는 것을 보면, ‘이건 친구가 아니라, 거의 엄마 아닌가’ 싶다. 그러나 보니에게 있어 우디는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애착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보니가 자신을 단순한 소모품으로 여기는데도, 우디는 보니에 대한 충성을 지킨다.
우디는 다른 장난감 친구들에게도 상당히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새로 합류한 조잡한 장난감 포키도 무리와 함께해야 한다며,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인형들은 우디의 생각과는 달리 우디 곁을 떠난다.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서 우디는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나간다.
우디는 50년대에 만들어진 카우보이 인형이다. 낡은 옷을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촌스러운 소리상자를 달고 있는 이 인형은 우리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카우보이는 서부 개척시대 법과 규율이 정비되기 이전, 공동체의 질서와 정의를 자체적으로 확립해야하는 당시 상황의 상징이다. 공동체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자신의 본분으로 하는 카우보이를 디즈니가 이 시점에서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당시 마구 확장해가는 아메리칸 드림이나 팍스아메리카나의 화려함을 회고적으로 부활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일찍이 공자는 ‘화이부동’을 군자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웠다. 의견과 생각이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야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군자도 아니고 군자가 될 수도 없지만, 다른 의견과 생각들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사회를 꿈꿔본다. 장난감 인형들의 세계, 토이스토리처럼.